여민 옷깃에 멈춘 시선…단추, 명품패션의 마침표

입력 2013-10-19 08:00:00

갈아 입을 옷을 위한 단추의 재발견

멋쟁이가 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그마한 단추 하나로도 옷차림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단추를 고르는 소비자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멋쟁이가 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그마한 단추 하나로도 옷차림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단추를 고르는 소비자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계절이 확연히 바뀌었다. 아침저녁 바람이 꽤나 쌀쌀하다. 가을 같지 않던 늦더위에 풀어헤쳤던 앞섶이 저절로 여미어진다. 하지만 옷장을 열면 한숨부터 나온다. 벌써 유행이 지난 재킷들만 가득하다. 그렇다고 백화점으로 달려가 무작정 카드를 긁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조금만 발상을 달리해보면 어떨까? 단추 몇 개만 바꿔달아도 멋쟁이로 변신할 수 있다.

◆낡은 재킷에 생명 연장을!

16일 대구 서문시장 아진상가. 단추, 실, 리본, 구슬 등 의류 부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가운데 단추가게는 10여 군데. 진열된 단추의 디자인은 수천 가지에 이른다. 플라스틱 재질이 대부분이지만 메탈 느낌이 나는 단추도 꽤 눈에 띄었다.

가장 저렴한 단추는 하나에 100원 수준. 아직도 100원짜리 동전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이마저도 비싸다고 깎아달라는 손님이 많다며 푸념했다. 반면, 개당 1만원을 호가하는 단추도 있다. '큐빅'과 같은 인조보석으로 알록달록 꾸며진 종류들이다. '이태리단추' 조용오 대표는 "불경기에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수선해서 입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단추 수요가 적지 않다"며 "서문시장의 전통이 오래되어서인지 대전'부산 등지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곤 한다"고 전했다.

올가을 유행 트렌드는 금빛에서 황동빛까지, 노란색이 도는 금장 단추다. 로즈골드빛 단추도 눈에 띈다.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지난해부터 앞다퉈 금장 단추를 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 데 따른 영향이다. 단추는 원래 여성용 위주이지만 최근에는 여성용으로 나온 단추를 일부러 찾는 남성 고객도 꽤 있다는 게 상인들의 귀띔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조그마한 단추 하나가 옷차림의 전체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단추가 단순히 옷을 여미는 역할만 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금장 단추는 네이비색 블레이저에 가장 잘 어울리는데 화려하면서도 캐주얼한 분위기를 표현할 때 제격이다. 김성영 한국맞춤양복협회 대구지부장(밀라노 양복점 대표)은 "상의 원단과 같은 색상의 단추를 선택하는 게 가장 무난하지만 밝은 회색에 감청색 단추를 단다면 훨씬 세련된 느낌이 든다"며 "양복을 맞출 때 자신이 원하는 단추를 들고 오는 고객도 다수 있다"고 했다.

단추의 숫자도 유행을 탄다. 상'하의 한 벌로 이뤄지는 남성 슈트의 재킷은 앞단추가 2개 달린 '투 버튼'이 대세다. 키가 커 보이는 효과를 주는 '원 버튼'과 복고풍 '더블 버튼'도 인기가 있지만 '스리 버튼'은 거의 찾는 이가 없는 형편이다. 소매 단추는 4개를 다는 게 기본적이다.

◆단추에 대한 담론과 가설

단추는 선사시대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원은 BC 6,000년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2개의 옷자락을 겹치게 한 뒤 동물 뼈 등으로 찔러 끼우는 형태에 불과했다. 영어 단어 'button'(버튼)의 어원은 꽃봉오리를 뜻하는 라틴어 'bouton'이다. 단추의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에서는 지금도 같은 철자로 쓰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13세기부터 금'은'보석으로 단추를 만들어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데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1만3천600개의 금 단추로 장식된 행사용 의상을 갖고 있었다고 하고,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장갑에 48개의 금 단추를 달았다고 한다. 단추가 급속도로 보편화된 것은 근대 이후다. 독일에서 1770년 금속 단추 제조기술이 발명된 이후 쇠붙이'상아 등 다양한 재료로 단추를 만들었으며, 19세기에는 산업혁명에 따라 단추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래는 신분의 상징이어서 아무나 단추를 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무관들의 공복(公服) 가운데 하나인 철릭 등에 단추를 사용하여 오다가 갑오개혁 이후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 전통 옷의 구조는 품이 넉넉하고 깊숙이 여며지는 것이어서, 띠나 고름, 가는 끈 등으로 매었기 때문에 단추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보통 여성복은 왼쪽에, 남성복은 오른쪽에 단추가 달려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설(說)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서양 귀족사회에서 부유층 여성들은 하녀들이 옷을 입혀주는 게 관례여서 여성복은 단추를 채워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리한 왼쪽에 단추를 달았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손수 옷을 입었기에 남성복에는 단추를 직접 채우기 편리한 오른쪽에 달았다고 한다. 한편, 남성복 슈트는 본래 군복에서 유래했으며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른손잡이들에게는 단추가 오른쪽에 달려 있어야 왼쪽 허리에 찬 칼을 뽑을 때 거추장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영님이공대학교 패션코디디자인과 허지영 교수는 "단추는 기능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디자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신중하게 고르기를 권한다"며 "보수적인 남성들도 작은 디테일의 변화로 이미지를 바꿔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지만 효과는 확실한 패션 소품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같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이 아니요 모양새다.'

우리 전통의복인 마고자를 예찬하며 외래문화의 올바른 수용자세를 비판적으로 논한 수필가 윤오영(1907~1976) 선생의 수필 '마고자'의 일부분이다. 사실 그의 표현대로 마고자 단추는 남성 한복에서 거의 유일한 패션 소품이다. 순금이나 호박 등의 보석으로 만들어 값도 한 세트가 100만원을 웃돈다.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려나온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17일 오너 일가의 부도덕성에 대한 질타에 대해 "(대여금고에서 찾은 게) 현금이다 금괴다 하는데 노리개, 비녀, 마고자 단추, 돌 반지 같은 잡동사니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복을 주로 입는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는 한복의 마고자 단추처럼 명품 슈트 단추로 '작은 사치'(small luxury)를 누리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2013년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로케팅'(rocketing) 현상의 하나다. 실질소득 증가율 둔화 등으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대부분의 물품은 저렴한 것을 찾지만 자신의 가치를 높이거나 표현할 수 있는 제품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 소비 형태다.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소품을 통해 명품이 주는 만족감을 찾겠다는 심리다.

영국 왕실에서 사용하는 단추, 휘장 등을 전속 공급하는 '벤슨앤클렉'(www.bensonandclegg.co.kr)의 경우 남성 정장용 단추 세트가 20만원 수준이다. 거의 웬만한 재킷 가격이지만 지난해 한국 진출 이후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벤슨앤클렉 코리아' 관계자는 "경제 불황과 맞물리면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스타일링에 변화를 줄 수 있어 고급 단추들이 큰 인기"라며 "전체적인 옷차림에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더해주는 클래식 액세서리는 멋 부리지 않은 듯하면서도 멋을 내고 싶은 남성들에게 알맞은 소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추는 사양산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단추가게를 20년 넘게 하고 있다는 서문시장 한 상인은 "대한민국에 몰아치고 있는 아웃도어 열풍처럼 지퍼를 사용하는 의류가 보편화되면서 단추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단추가 나타내는 그만의 멋을 아는 소비자들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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