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햇볕정책은 친북정책"이라고 해 민주당의 반발을 산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지난해 한 강연에서 "후진국에서는 경제개발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최근 공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공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영엔 유 원장의 '역사 인식'을 공격할 호재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유 원장의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이 1968년에 이미 이런 주장을 했었다. "개발도상국에 민주주의란 아직 구입할 여유가 없는 사치품으로, 비(非)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에서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로 이행하려면 우선 경제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이 그 증거였다. 헌팅턴의 논리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로 계승돼 하나의 테제로 자리 잡는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리 명제'라고 한다.
그러나 1997년 폴란드 출신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민주주의국가와 독재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비교한 결과 전자(2.44%)가 후자(1.88%)보다 높았다는 실증 분석을 통해 독재와 경제성장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인도 출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르마티아 센의 견해도 이와 같다. '리 명제'는 매우 선택적이고 제한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정립되었으며, 국가 간 종합적 비교를 통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개발의 원인으로 독재체제 그 자체보다는 경제 환경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경제성장이 혹독한 정치체제보다는 우호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조건으로 센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발견되는 '경쟁에 대한 개방성, 국제시장의 활용, 높은 수준의 문자 해독률과 학교교육, 성공적인 토지개혁, 투자, 수출, 산업화 공적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제시한다. ('자유로서의 발전')
문제는 이런 경제 환경이 정부의 의지가 없다면 생겨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들이 독재체제의 정책으로 생겨났어도 그 정책을 만들어낸 독재체제는 경제발전과 상관없다고 할 수 있을까. 센은 그런 정책들이 권위주의 요소에 의해 뒷받침됐다는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경제개발의 역사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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