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컷" 메가폰 잡은 왕따 졸업생

입력 2013-10-18 10:48:11

대학생 박한울 씨 영화 '호루라기' 25일 대구 시사회

박한울 씨가 자신의 왕따 피해 경험을 담은 영화
박한울 씨가 자신의 왕따 피해 경험을 담은 영화 '호루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학교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문제아로 몰리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왕따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폭력의 실상과 그 해결 방안을 담은 영화를 제작한 한 청년의 이야기가 화제다.

사연의 주인공은 한국영상대학교(세종시) 1학년에 재학 중인 박한울(20) 씨. 박 씨는 25일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 '호루라기'를 대구에서 상영하기 위해 17일 대구를 방문했다. 영화 '호루라기' 시사회는 25일 강북경찰서와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러닝타임 70여 분의 '호루라기'는 박 씨 자신의 경험을 담았다. 초'중'고교를 서울에서 다닌 그는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달림을 당했다. 왕따는 중학교에서도 이어졌고, 고교에 와서는 학교폭력 피해로까지 심각해졌다. 물건을 뺏기는 것은 물론 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다. 견디다 못해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초'중학생 때는 왕따당한다는 사실을 부모님과 선생님께 알려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고교 때엔 학교폭력 피해자인 저를 문제아로 몰고, 전학을 권하는 학교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쉬쉬하는 학교의 행태에 분노했고, 형식적인 학교폭력 대응에 실망했다.

그러나 박 씨는 6년 넘는 괴롭힘에도 등교를 거의 빼먹지 않고 꿋꿋이 시련을 이겨냈다. 학교폭력 피해자임에도 전학을 권하는 학교 측에 단호하게 대응한 부모님이 큰 지지가 됐다. 그는 지난해 고교를 졸업했고, 어릴 때부터 희망했던 대로 영상제작자의 꿈을 좇아 대학진로도 정했다. 이런 그가 학교폭력의 문제성과 해법이라는 주제에 몰두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 씨는 고3이던 작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언론보도에서 접하고 안타까움에 '크리미널 스쿨'(Criminal school)이라는 50초짜리 영상을 제작했다. 학교폭력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짧은 영상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유명세를 탔다.

용기를 얻은 박 씨는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자전적 사연을 담은 영화 '호루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실제 왕따 피해자가 일부 배우로 출연했고, 영상 장비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마련했다.

영화 '호루라기'는 같은 반 왕따 피해 학생의 자살을 막으려 했지만 막지 못했던 한 여학생 '소연'이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면서 겪는 또 다른 왕따 피해를 다루고 있다. 소연은 왕따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강제전학을 종용받는다. 괴로워하던 소연은 스쿨폴리스로부터 호루라기를 건네받으면서 용기를 얻는다. "가해학생은 정상수업 받고, 피해학생은 강제전학입니까!"라는 극 중 소연의 절규는 박 씨의 절절한 경험을 담고 있다. 박 씨는 다음 달부터 부산, 전주, 전남에서 이 영화의 시사회를 할 계획이다.

박 씨가 생각하는 학교폭력 피해 해법은 '당국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학교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제 피해자들을 만나 원하는 바를 들었으면 합니다. 처벌 일변도의 학교폭력 정책보다는 학교 테두리 안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인성 교육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