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깡철이' 순이 엄마 역 김해숙

입력 2013-10-17 13:57:06

"나 김태희야" 부르는 순이…절대 민망하지 않았어요

배우 김해숙(58)은 "아직도 연기자로서 부족하다"고 했다. "겸손이 아니고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한다"는 베테랑 연기자. 정말로 입바른 소리가 아닌 듯하다. 그런 생각이 "배우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이제껏 그래 왔다.

"한 커트, 한 신이 나오더라도 내가 나온 장면은 책임을 져야죠. 같은 재료 가지고도 요리가 달라지듯 배우가 어떻게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연기가, 또 연기자로서의 영역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영화 '도둑들'에서 맡았던 '씹던껌'으로 임달화 씨와의 멜로도 들어오게 된 것 같답니다."(웃음)

현재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관객과 시청자들을 찾고 있는 그는 비중이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다. 하지만 똑같이 열과 성을 다한다. "당연하다"고 짚는 이 베테랑 배우는 "누구나처럼 똑같이 열심히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변함없이 노력을 기울이니 많은 분의 눈에 들지 않았나 싶어요." 40년에 걸친 연기 경력의 배우 김해숙이 여전히 대중과 마주할 수 있는 이유다.

김해숙은 가진 것 없어도 깡 하나와 긍정의 힘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던 부산 사나이 강철(유아인)이 자신의 삶을 뒤흔들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깡철이'(감독 안권태)에서 투톱 주인공으로 스크린 공략에 나섰다. 극 중 아들의 돌봄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는 치매 환자 엄마 순이가 이번에 맡은 역이다.

아들을 죽은 남편으로 생각하고 행복했던 과거 시간에 머물러 있는 엄마. 주인공이라 애정이 좀 더 깊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니 내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다. 마치 잉태를 해 출산을 한 느낌이랄까?"라며 "내가 한 캐릭터들을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고, '깡철이'라는 작품 하나가 덧붙여진 것이다. 물론 '깡철이'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 캐릭터가 된 것이긴 하지만"이라고 웃었다.

"강철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 안에 엄마가 있잖아요? 병에 걸린 엄마 역할이지만 느낌이 정말 달랐어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누군가는 했던 역할인데 내가 하면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요."

김해숙은 "치매 걸린 순이를 겉모습부터 불행해 보이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의지는 순이 캐릭터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글라스에 화려한 모자를 쓴 엄마는 나이는 들었지만 예쁜 모습이다. 또 자신을 "김태희"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귀여운 중년이다.

"모자 같은 걸 쓰면 소녀 같지 않을까, 가장 예쁜 모습이지 않을까 했죠. 선글라스에, 구두도 굽 있는 것으로 신었고요. 옷도 한 4, 5번 가공했어요. 오드리 헵번 스타일로 한 거죠. 그게 모든 여자의 꿈이지 않을까요? 감독님이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서 좋았어요. 엄마의 모든 게 잘 살아난 것 같아요. 호호호."

김해숙은 자신을 김태희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 민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독님이 예쁜 여자의 기준을 그렇게 잡았다"며 자신도 이름을 바꿔볼 생각이라는 농담도 덧붙인다.

김해숙은 앞서 언론시사회에서 기자들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기자간담회에서 한 평론가가 김해숙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열심히 했는데 보상 같은 느낌을 받아서 울컥했죠. 연기에 대해서도 극찬을 해주니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내 진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아 정말 큰 힘이 됐고 고마웠죠."

이런 칭찬은 그가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짚는다. 올해 그의 말마따나 "일복이 터진 배우 중 한 명"이다. '깡철이'를 비롯해 '소원'을 개봉했고,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사랑받았다. 현재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와 '왕가네 식구들'에도 얼굴을 비추고 있다.

김해숙은 아들로 호흡을 맞춘 유아인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아인이는 촬영할 때 에너지가 하나도 줄지 않는다"며 "어느 순간 깡철이가 돼 있었고, 나도 순이가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제 자기 엄마와 내가 닮았대요. 성격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요. 호호호."

그는 "예전에는 딸 가진 부모가 조금만 뭐해도 '우리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는 그 심정을 알게 됐어요. 아인이를 비롯해 드라마에 나와 아들로 삼았던 친구들이 인간적으로 괜찮아서 좋게 생각해요. 그 이상은 아니고요."

김해숙은 '깡철이'를 마주하는 관객에게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에 눈물 한 바가지, 한 드럼통은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무언가 꾸미고 설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영화의 주제는 그게 아니에요. 깡철이의 인생을 그리고 싶었던 거죠. 욕심내서 울리려고 하면 하는데 우리도, 감독님도 그런 걸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해요. 누구나 피 끓는 청춘 한 번은 보내잖아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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