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일 대구시장에게 대구 문화예술계에 비선(秘線)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초대 대구문화재단 대표의 임기 만료에 따라 후임 인선(人選)이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쯤으로 기억한다. 김 시장은 손사래를 쳤다. 비선은 항상 대가가 따라 절대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비선이라며 헛모양새를 잡고 떠벌리는 인사가 아니라, 어떤 사안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사심(私心) 없이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대구시는 현재 대구문화재단 상근(비상근) 대표, 대구시민회관장,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 등을 인선 중이다. 대구문화재단 대표 후보는 이사회의 추천을 마쳤고, 시민회관장은 지원자 면접이 진행 중이다. (재)대구오페라하우스는 이사회가 관장을 맡을 상근(비상근) 대표 선출 방식을 논의한다. 중간 과정이야 어떻든 최종 결정권자는 대구시장이다.
위에 거론한 세 단체의 리더는 앞으로 대구 문화예술계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 갈 역할을 해야 해 인선이 매우 중요하다. 세 단체는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이 때문에 수장을 보좌하는 하부 조직의 역량을 명확하게 판단해 인선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대구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거의 모든 돈줄을 쥔 대구문화재단은 사무처장과 부장 등 주요 직원이 대구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장기적으로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이 능력의 유무에 따라 대표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대표의 제1목표는 재단 기금 확충이어야 한다.
대구시민회관장은 조금 다르다. 조직이 작은데다 전문 공연장 중심이어서 기획력과 경험이 풍부한 실무형 인사를 관장으로 앉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시립오페라단, 대구국제오페라조직위원회 3개 단체를 통합해 출범하는 (재)대구오페라하우스는 상근(비상근) 대표인 관장을 정점으로 경영본부장, 예술감독제 형태로 조직된다. 경영과 문화예술을 분리했지만, 문화예술 전문 관장일 때는 장기적으로 예술감독과의 의견 충돌에서 오는 갈등이 문제가 될 여지는 있다.
지금까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을 임명한 예로 보면, 김 시장에게 대구 문화예술계의 사정과 인물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줄 만한 비선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인 대구시장에게 비선이 없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모든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가인 대구시장에게 비선이 없음은 불행하다. 사심 없는 조언을 들을 곳이 없다는 것은 인덕(人德)이 없다는 것과 같아서다. 그러니 과거 이러한 직책에 대한 인선 때마다 시끄러웠고, 그때마다 임명권자인 대구시장은 곤혹스러웠다. 확실하게 신뢰할 정보가 없으니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은 리더의 조건을 21가지로 정리했다. 성품, 카리스마, 헌신, 소통, 능력, 용기, 통찰력, 집중력, 관대함, 결단력, 경청, 열정, 긍정적 태도, 문제 해결 능력, 관계, 책임감, 안정감, 자기 단련, 섬기는 마음, 배우려는 자세, 비전 등이다. 잡다한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치는 부분도 많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 가운데 몇 개쯤은 그 자질이 있다. 거꾸로 전 세계의 모든 리더들을 다 찾아봐도 이 자질을 모두 갖춘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중요한 점은 자리에 따라 리더의 우선순위 덕목이 다르고, 때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덕목도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관, 시장, 소규모 단체의 장 등 자리마다 공통으로 필요한 자질도 있겠지만, 그 자리의 특성에 맞는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시장은 인선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뽑았다'는 판에 박힌 설명보다는 정말 대구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리더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면밀하게 살펴보기를 바란다.
하나 더 덧붙이면, 자천타천으로 이들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은 맥스웰의 책 '리더의 조건'을 정독해 보기를 권한다. 그가 제시한 21개의 자질 가운데 다른 사람과 차별 있게 갖춘 덕목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체크를 해보라는 뜻이다. 자질이 부족한데도 자리를 바라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탐욕일 뿐이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