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미끄러지며 방파제와 충돌…생존자들 망루서 '17시간 사투'
포항 영일만항 앞바다에서 침몰한 파나마 화물선 '쳉루(CHENG LU'8천461t'승선원 19명)호'의 생존자들은 구조되기까지 총 17시간을 높은 파도와 살을 저미는 듯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달 15일 동해남부 전 해상에 풍랑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포항 영일만항 앞바다에도 최고 8m에 가까운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지난 태풍 '다나스'로 인해 약 6m의 파도가 일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날 해상 상황은 중형 태풍급에 해당하는 악천후였던 셈이다.
포항해양경찰서와 생존자 등에 따르면 14일 군산에서 철제 화물을 싣고 포항에 정박한 쳉루호는 가진 짐을 모두 부린 후 15일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상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어쩔 수 없이 잠시 묘박지(바다 한가운데의 임시 정박지)에 정박해 있었다. 원래 높은 파도가 몰아칠 때는 방파제 안쪽 항구에 배를 정박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이 경우 항만세를 지불해야 하는 까닭에 쳉루호는 무료인 묘박지에 정박했던 것. 이날 오후 3시 40분쯤 갑자기 쳉루호의 선체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배의 고정을 위해 내려놓았던 닻이 모래밭에 미끄러지며 선박이 함께 끌려가는 '주묘사고'였다. 선원들은 급히 닻을 끌어올리고 배를 고정하려 했으나 높은 파도는 쳉루호를 점점 영일만항 북방파제로 밀고 갔다. 결국 2시간여 후인 오후 5시 46분쯤 쳉루호의 선미(배의 꼬리 부분)가 방파제와 충돌해 기관실부터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갑판에 나와있던 선원 중 일부는 충돌 충격과 높은 파도로 인해 바다 위로 떨어졌으며, 또 일부는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충돌 뒤 2시간여 만에 배는 중앙 돛대를 제외한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배 위에 남아 있던 7명의 선원들은 중앙 돛대 위, 폭 1m 남짓한 망루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다. 또 6~8℃의 낮은 기온에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체온을 나누며 목숨을 이어 갔다.
사고 신고를 받은 해경은 즉시 경비함정과 헬기 등을 투입했으나 접근은커녕 짙은 물안개로 시야 확보까지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욱이 높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자칫 해경 함정까지 전복될 아찔한 상황이었다.
속수무책이었던 시간이 흐르고 다음날인 16일 오전 5시쯤 기상 상황이 호전되면서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바다에 내려왔던 12명 중 9명은 저체온증 등으로 인해 시신만을 인양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해안가 가까이 떠내려왔던 1명은 헬기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으나, 2명은 17일 현재까지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다.
구조작업에 나섰던 남해해경 특수구조단 이순형(35) 경장은 "좁은 망루에서 많은 인원이 꼭 달라붙은 채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배가 계속 흔들리고 망루가 너무 좁아 헬기로는 구조가 불가능했다. 로프를 연결해 한 명씩 북방파제로 옮기려 했으나 줄이 계속 흔들려 구조대원 역시 무척 위험했던 상황이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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