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우주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사투
영화가 시작되면 지구 상공 600㎞에 익스플로러 우주 왕복선이 떠있다. 허블 망원경에 새로운 시스템을 스캔하는 라이언 스톤 박사의 모습이 보인다. 베테랑 우주 비행사 맥 코왈스키는 그녀에게 유쾌한 농담을 하며 능수능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스크린에 비친 지구의 모습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특히 해가 뜨는 모습을 지구 반대편에서 서서히 볼 때에는 아름답다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구름으로 곱게 가려진 산과 바다도 무척이나 눈부시다. 처음으로 우주 비행에 나선 스톤 박사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다. 특히 고요해서 우주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폭파된 구식 인공위성이 날카로운 조각들로 부서지면서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것. 잔해 폭풍은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익스플로러와 충돌하는 궤도 위에서 급속하게 확산된다. 결국 무시무시한 잔해 폭풍에 왕복선은 파괴되고 스톤과 코왈스키는 생존하지만, 통신도 두절되고 구조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우주 공간을 표류하는 두 사람은 어떻게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 긴 여정이 이제 시작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그래비티'는 이렇게만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이다. 우주 공간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잔해 폭풍이 우주선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며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엄청난 속도로 궤도를 도는 잔해는 인간이 키운 재앙이다. '그래비티'에서 처음 놀라는 것은 외계인이나 외계 우주선을 악으로 설정해 재난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상상 속의 괴물은 없다. 인간이 만든 재난이 인간을 위협하면서 SF영화의 기존 컨벤션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정말로 우주에서 발생할 만한 설정.
이제부터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의 지구 귀환 작전이 시작되는데,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코왈스키는 우주의 미아가 되고 스톤 박사만 홀로 남게 된다. 이것이 놀라운 것은 영화가 시작된 지 절반도 지나지 않아 스톤 박사 혼자만 우주에 남았다는 것 때문이다. 이제 이야기는 스톤 박사 홀로 끌고 가야 한다. 그녀 혼자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당연히 영화의 많은 시간과 화면은 스톤 박사 역을 맡은 산드라 블록이 혼자 채운다. 이렇게 보면 영화는 홀로 버려졌을 때 발생하는 극도의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중력(gravity), 즉 지구가 당기는 힘, 그 힘이 주는 강한 생명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스톤 박사 홀로 고군분투하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텔링도 놀랍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매혹적인 특수효과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홀로 우주를 떠도는 극도의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하게 만든 와이어에 매달려 산드라 블록은 수십 시간을 연기해야 했다. 중력이 없어 계속 회전하는 고통을 참으면서 그 시간을 메웠는데, 영화를 보면 우주의 그 공간이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이 영화가 정말로 신기한 것은 놀라운 테크놀로지로 우주 공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우주에 가보지 못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과연 저렇겠구나라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무중력의 부드러운 움직임,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이동하는 잔해 폭풍, 산소가 없어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공간. 그 느낌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살아있다. 마치 극장이 우주선이 된 듯한 느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영화 중반까지 롱 테이크를 선호했다. 말 그대로 컷 없이 테이크가 긴 화면을 통해 천천히 유영하듯 움직이면서 살아가는 우주인의 모습을 스크린에 통째로 실시간처럼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우주인의 눈에 비친 지구의 모습도 부드럽게 보여주고, 우주인이 활동하는 우주의 공간도 우아하게 영화 속에 그려진다.
'그래비티'에는 우주와 인간을 둘러싼 철학적 깊이나 사유의 놀라움은 없지만, 우주 공간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는 단언컨대 지금까지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 기존의 우리가 봐왔던, 우주를 다룬 그 수많은 영화는 허구가 되어 버린다. 우주 공간의 느낌을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렸고, 우주의 공포도 현실적으로 그렸다. 이것은 분명 전혀 새로운 SF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다.
마지막 팁.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창조한 새로운 우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드시 IMAX에서 3D 영화로 관람해야 한다. 다른 영화는 몰라도, 이 영화만큼은 이 시스템에서 관람했을 때 제대로 된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넓은 우주의 느낌, 그 공간과 시간에 직접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광신도인 제임스 캐머런이 '그래비티'를 두고 "이 영화는 미쳤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한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