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오는 10월 30일 경북 포항남'울릉과 경기도 화성갑에서 실시되는 재보선에 앞선 새누리당의 공천은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각인시켜줬다.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은 출범한 지 8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박근혜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도덕성과 새 정부의 정치철학과는 전혀 맞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 퇴행적이라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새누리당은 화성갑에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포항남'울릉에는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공천했다. 두 후보자 모두 야당 후보자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자 모두 그동안 새누리당이 강조해 온 공직 후보자 공천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의 공천 기준을 확립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총선 공천은 힘 있는 어느 누가 또는 그런 어느 몇 사람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이라고 밝힌 바 있다. 18대 총선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따랐던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울분을 토했던 경험에서 우러난 공천 기준의 하나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비대위원장으로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이 납득할 그런 공천 기준을 만들고 우리 당은 이런 이런 기준으로 공천하겠다고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며 "그 기준에 충실하게 투명하고 개방된 제도를 만들어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라고도 밝힌 바 있다.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 김무성 의원 등이 당시 공천에서 탈락한 것은 새누리당이 마련한 공천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특정인이 공천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다. 당 대표는 물론이고 '실세'를 비롯한 누구도 공천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당시 새누리당은 '비리 전력자'에 대한 공천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을 '도덕성 공천'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목표가 아니라 정치를 바꾼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공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포항과 화성 단 두 곳에서 치러지고 있는 이번 재보선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 온 공천 기준을 파기해 버렸다는 점에서 정치 퇴행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화성갑에 출마한 서 전 대표의 경우 친박연대 대표 시절 공천 헌금 등의 비리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등 비리 전력자였다. 새누리당의 공천 기준에 따르면 서 전 대표의 공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전혀 연고 없는 이곳에 공천을 신청했고 여론의 따가운 시선 속에 공천을 따냈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는 서 전 대표를 공천하면서 '힘 있는 인물론'을 내세웠다. 당선 가능성도 감안했다고 했다. 비리 전력자에 대한 공천 배제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본인이 충분히 소명했다며 얼버무렸다. 당시 받은 공천 헌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서 전 대표가 친박연대를 창당, 친박 인사들의 당선을 도우는 등 박 대통령을 위해 정치를 했다는 점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천 기준은 힘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포항에서도 마찬가지다.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당을 위해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약하다'며 공천을 주지 않는 대신 새누리당의 반대편에 섰던 인사를 발탁하는 공천을 했다. '대선 공신'을 우대하지는 못할망정 가차없이 버리는 공천을 한 것이다. 포항 공천에서는 여당이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인사는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다는 오만함도 배어난다. 그러나 갓 출범한 박근혜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정부의 국정철학을 체득하고 있는 충성심 있는 인사들이 곳곳에 포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철학이 다른 인사를 기용하는 통합의 공천은 이 시점에서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워놓은 공당의 공천 원칙을 단번에 파기해 버렸다. 새누리당은 '힘 있는 실세' 공천을 좌지우지하거나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공천 행태를 재연했다. 내년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어떤 공천 기준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려고 할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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