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과제연구' 프로그램 확산

입력 2013-10-15 07:28:44

대구경북 청소년 학술대회 최우수 사례 2題

과제연구를 통한 논문 쓰기는 창의력과 사고력,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우기에 좋은 프로그램이다. 과제연구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대구 대건고 학생들이 논문에 쓸 기초 자료를 모으기 위해 월곡역사공원에서 유적 조사를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과제연구를 통한 논문 쓰기는 창의력과 사고력,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우기에 좋은 프로그램이다. 과제연구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대구 대건고 학생들이 논문에 쓸 기초 자료를 모으기 위해 월곡역사공원에서 유적 조사를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구미 현일고 학생이 논문에 담을 자료를 얻기 위해 화학 실험을 하고 있다. 현일고 제공
구미 현일고 학생이 논문에 담을 자료를 얻기 위해 화학 실험을 하고 있다. 현일고 제공

최근 고교 현장에 '과제연구'(R&E'Research & Education)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 과제연구는 학생들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조사, 연구 활동 후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활동이다.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희망하는 진로와 전공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쌓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은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 하지만 그 효과에 주목한 일부 일반고들도 가세, 과제연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고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제2회 대구경북 청소년 학술대회가 이달 7일 논문 제안서 접수를 시작으로 닻을 올렸다. 1회 대회 때 최우수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구 대건고와 구미 현일고를 찾아 과제연구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대구 대건고 "자사고답게 만드는 힘의 원천"

대구 고교 사이에서 과제연구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은 아직 높지 않다. 대구 경우 특목고와 자사고조차 이 이야기가 나오면 명함을 내밀기 민망할 지경이다. 일선 고교는 물론 대구시교육청 내에서도 여전히 '수능 성적=진학 실적'이라는 해묵은 공식만 되풀이하는 실정이다.

대도시지만 변화의 흐름에 둔감한 대구에서 대건고는 독특한 존재다. 국제경제, 비교문화 등 전문교과를 개설하고 학습동아리 활동을 장려하는 등 학생들이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 때문. 다만 기숙사 내에서 이뤄지는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대건고 이대희 교무부장은 "현행 대학입시는 수능 성적 외에 학교에서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했는지를 중요시한다"며 "학교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즐겁게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진학 실적도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과제연구는 대건고가 자랑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공통의 관심 주제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하고 학교 측은 교사 외에 외부 강사까지 활용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건고는 지난달 자체적으로 제2회 학술논문대회를 열었다. 3월 대회 공고 후 8월에는 모두 82편의 논문이 제출됐고, 논문 심사와 심층면접, 프레젠테이션 심사까지 거쳐 최종적으로 7편의 논문이 발표작으로 선정됐다. 대건고 정인환 연구부장은 "여름, 겨울방학 계절제 수업으로 전문교과를 개설하고 과제연구 등 다양한 특강을 마련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학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대건고는 교외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매일신문사가 올해 초 주최한 제1회 대구경북 청소년 학술대회에서 최우수상 수상자를 배출했을 뿐 아니라 교육부 주최 국제청소년학술대회(ICY)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ICY에서 대건고는 지난해 2팀에 이어 올해는 3팀이 최종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 이는 전국 유명 특목고, 자사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과다.

학생들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최정우(2학년) 군은 ICY에서 '가격과 판매 촉진 유형에 따른 청소년 소비자들의 반응 형태 유형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호평을 받았다. 최 군은 "지난 겨울방학 때 국제경제와 연구방법론을 수강하고 경제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이 효과를 봤다"며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관심 분야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어 재미있었고 공부에 대한 흥미도 더 커졌다"고 했다.

안효재(2학년) 군은 "학교에서 고급화학, 수리'생물 R&E 특강 등 깊이 있는 수업을 들은 것이 논문을 작성하는 데 큰 힘이 됐다"며 "과학 실력이 부쩍 늘어 대학에 진학해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대건고 이두영 교장은 "수준 높고 다양한 학술대회를 열면서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경쟁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힘든 입시 자신감 키우는 무기" 구미 현일고

구미에서 성적이 상위권인 중학생 가운데 다른 지역 고교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각 고교들이 변화하는 대학입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수능 성적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뿐 학교 내에서 학생 수준별로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비교과 활동도 활성화시키지 않은 탓에 진학 지도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진학 실적 역시 좋지 않다는 것.

그래서 현일고의 학교 운영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다. 현일고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적성 활동은 공부, 특히 대학입시 준비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다. 교사의 힘으로 부족하면 외부 강사까지 동원해 텝스, 토익, 축구, 농구, 논술 등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수학, 과학경시대회는 물론 한국사능력시험, 모의토익시험까지 교내에서 실시해 시상하면서 학생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있다.

그리고 또래 지도(Peer Tutoring) 프로그램을 시행, 특정 영역의 성적이나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이 또래나 후배 학생들을 지도하는 봉사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른바 '현일 PTP(Peer Tutoring Program)'다. 정기적으로 모여 관심 주제에 대해 학습하고 교내외 관련 대회에 출전할 준비를 하는 교과별 스터디 그룹 활동도 장려한다.

현일고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줄 방법을 고민한 끝에 지난해부터 과제연구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학생들은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 방과후 시간을 쪼개 연구방법, 논문 쓰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익혔다. 관심 주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제1회 대구경북 청소년 학술대회에 8팀이 출전, 최우수상 1개와 우수상 7개를 받는 등 모두 입상한 것.

이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과제연구 프로그램이 유익했다고 입을 모았다. '일제 잔재의 헌법적 평가와 대책'이라는 논문을 제출했던 이희은(3학년) 학생은 "학교 법경제동아리에서 과제연구 활동을 한 덕분에 논문을 제때 낼 수 있었다"며 "스스로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수시모집 서류 작성 등 입시 준비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과제연구 프로그램의 효과를 확인한 현일고는 이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 시행하고 있다. 이달 21, 22일에는 '아성 학술대회'라는 이름으로 교내 논문 발표 대회도 마련한다. 이 대회에는 21개 팀이 참가할 예정이다.

현일고 장창용 교장은 제2회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 중이다. 장 교장은 "청소년 학술대회를 통해 아이들의 역량과 교사들의 능력을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며 "학교 주변에 학생들의 학습 욕구를 제대로 채워줄 만한 수준의 사교육 업체들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학교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을 챙길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