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IMF) 사태가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50대 이상이 입었다. 정년감축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며 구조조정의 화살의 첫 타겟이 되어 사회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최근에는 다시 정년연장, 노년층 일자리 창출 등의 움직임이 살아나고 있다. 백세시대라는 말처럼 은퇴 후 최소 30년 이상의 삶이 주어져 있는데 그저 노후라는 말로 등산 다니고, 공원에 모여 바둑 두는 것으로 그 기나긴 날들을 보내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꼭 금전적인 벌이가 있는 경제활동이 아니더라도 노년층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하며 그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제는 전 사회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예술이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뒷방 노인네 역할을 주로 맡아오던 원로배우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주연들에 버금가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자주 등장하고, 아예 그들 자신이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의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바로 '꽃보다 할배'의 출현과 성공일 것이다.
'꽃보다 할배' 중 한 분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잠시 소개할까 한다. TV 속의 신구 선생을 무대에서 뵌 건 국립극단의 '파우스트'가 처음이었다. 17년 전의 그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는 장민호 선생이 곧 파우스트고, 신구 선생이 곧 메시스토였을 것이다. '느낌, 극락 같은' '눈물의 여왕'에 이어 한 무대 속의 배우로 같이 만난 건 '어머니'에서였다. 손숙 선생의 남편 돌이 역. 육십 대 중반의 나이에 고쟁이만 입고 반라(?)로 무대를 누비던 귀여운 배우 신구. 종종 있던 뒤풀이자리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며 후배들에게 "한 극단에 최소한 10년은 붙어 있어라"는 조언을 잊지 않으셨다. 그 말씀을 듣고 10년이 지나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이후 지난 10년간 식지 않는 인기로 방송과 영화를 해오시면서 연극무대도 놓지 않는 열정이 그에겐 있다. 올 한 해에만 벌써 국립극단의 '안티고네'와 지난주 서울서 막을 내린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두 편의 연극을 하셨으니 말이다.
"인생이 묻어난다"라는 표현이 있다.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는 노배우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 같다. 오랜 세월을 거쳐 직업으로서의 배우라는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합일을 이루어 어떠한 연기를 해도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설득력을 얻는 경지. 그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지면서 저렇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최 영(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fur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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