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떨어진 중·고등학생 집단 발병 는다
결핵 환자가 좀처럼 줄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방심했던 탓이 크다. 과거보다 결핵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결핵 사망률과 발생률이 가장 높은 것이 현실. 게다가 최근 들어 장시간 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중'고등학교에서 면역력이 낮은 학생들 가운데 결핵 환자가 집단 발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 결핵에 취약한 학교
"결핵 환자가 더 안 나와야 할 텐데…."
7일 오후 2시 대구의 한 중학교 운동장. 결핵 검진 차량 앞에 교복과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지난달 이 학교에 결핵 환자가 1명 발생하자 대한결핵협회에서 '밀접 접촉자'들을 대상으로 결핵 감염자 검진을 하러 나온 것. 이날 학생 100여 명과 교직원 20명 등이 흉부 X선 촬영을 했다.
이 학교에 결핵 환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26일. 오랫동안 감기 증상을 보이던 3학년 학생 A군이 대학병원에서 활동성 결핵 확진 판정을 받고 관할 보건소에 신고했다. 이 때문에 이동 수업을 하며 A군과 접촉한 3학년 학생 100여 명과 교직원들이 모두 결핵 검사를 받았다.
문제는 결핵 환자 발견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 이 학교 교장은 "A군이 병원에 안 갔다면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결핵 환자인 것을 몰랐을 것"이라며 "추가 감염자를 막기 위해 A군에게 지난달 23일부터 등교 중지 요청을 내렸다. 각 반에 감기 환자는 제법 있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 결핵을 의심할 수도 없고, 결핵이 확산될까 봐 걱정이 많다"고 우려했다.
최근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결핵균에 집단 감염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올해 8월에는 대구 동구의 A고등학교에서 전교생 1천여 명 가운데 170여 명이 결핵균에 감염됐다. 이 중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학생은 17명, 나머지 학생들은 '잠복 결핵'으로 나타났다.
관련 법에 따라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은 학생 또는 수업에 들어가는 교직원 중 전염성 결핵 환자가 1명 발생하면 해당 학급을 대상으로 모두 결핵 검사를 받는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또 같은 학년에서 6개월 안에 결핵 환자 2명이 나오면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결핵 환자가 3명일 경우 전교생이 결핵 검사를 받도록 돼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결핵 환자가 발생한 탓에 지역 초'중'고교와 대학을 대상으로 벌인 역학조사는 무려 115건에 이른다. 이중 고등학교가 75곳으로 가장 많았다. 사흘에 한 번꼴로 이뤄진 셈이다.
대한결핵협회 대구경북지부 운영지원과 정현진 과장은 "초등학생은 영아 때맞은 BCG 면역력이 남아 있어서 결핵에 잘 걸리지 않는다. 결핵협회가 매년 고등학교 2, 3학년을 대상으로 결핵 검진을 하는데 동구의 A고등학교는 지난 3월 1명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고, 이후 2명이 추가로 나와 전교생을 대상으로 결핵 감염 검진을 했다"고 밝혔다.
◆ 면역력 약한 10대들, '빨간불'
전국에서 매년 꾸준히 10대 결핵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10~19세 결핵 환자는 1천968명, 이 중 대구 지역 환자는 111명으로 나타났다. 111명 중 지난해 새로 결핵에 걸린 환자(신 환자)가 103명으로 대구에서는 해마다 100여 명의 10대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추세다. 경북도 같은 기간 10대 신 환자가 115명 발견됐다.
잠복 결핵 감염자까지 통계에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결핵균 감염자가 청소년층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결핵균에 감염된 잠복 결핵 환자가 모두 결핵 환자로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결핵은 보통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병하는데 문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고, 체력에 저하된 요즘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결핵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결핵전문병원인 복십자의원 윤석주 원장은 "결핵은 어디에서 감염되는지 경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균과 접촉 자체를 차단할 수 없다. 보통 잠복 결핵 환자 중 10% 정도만 결핵에 걸린다고 보고 있다"며 "결핵균에 옮아도 발병하지 않도록 평소 체력 관리가 필요한데 과로와 다이어트,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결핵에 걸릴 위험에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대병원 호흡기내과 이재희 교수도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결핵균에 노출될 수 있는데 이는 예측할 수 없는 확률"이라며 "균형된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적절한 수면을 취하면서 체력을 관리해 면역력을 높이면 결핵에 걸릴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요즘 청소년들이 결핵에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 결핵, 방심하니 퍼졌다
결핵은 전 세계적으로 HIV 감염, 말라리아와 더불어 심각한 전염병 중 하나지만 그 위험성이 우리 사회에서 과소평가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0년 전 세계에 결핵 환자가 880만 명 발생했고, 사망자만 110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과거 정부의 결핵 환자 관리는 실패였다. 정부는 1965년부터 1995년까지 5년 간격으로 전국적으로 결핵 실태조사를 하다가 1995년 돌연 이를 중지하고 2000년부터 신고제로 바꿨다. 결핵 유병률과 감염률, 감염 위험률 등을 파악해 오다가 결핵 환자 수가 주춤하는 것처럼 보이자 방심한 것.
김희진 대한결핵협회 연구원장은 지난해 대한내과학회지에 발표한 보고서인 '한국에서의 결핵현황'에서 "우리나라 결핵 발생률과 유병률, 사망률 모두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 높은 실정인데, 근본 원인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결핵 감염자가 많이 발생해 아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신 환자 중 다제내성률이 높고, 전체 환자 중 재치료자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은 그동안 환자 관리가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 잠복 결핵이란? 잠복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됐으나 결핵으로 발병하지 않은 상태. 흉부 X선 촬영 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나 피부반응 검사와 혈액 검사에서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잠복 결핵 환자 중 결핵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전체 환자의 10%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면 결핵이 발병할 위험성이 항상 있기 때문에 의료진들은 잠복 결핵 환자들도 9개월간 꾸준히 약을 복용해 결핵을 미연에 방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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