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출신 고 백태호 화백, 명태 고장 강원 고성 초대전

입력 2013-10-11 07: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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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작가의 절규 "날아오르는 명태 보이느냐"

박태호 작
박태호 작 '해와 명태'
박태호 작
박태호 작 '달과 명태'

대구 출신 '명태작가' 고(故) 백태호 화백(1923~1988)의 작품이 명태의 고장 강원도 고성에서 비상(飛翔)한다. 고성군립 진부령 미술관(관장 전석진)은 '2013 고성명태축제'의 특별기획초대전으로 백태호 화백의 '마른명태로 지펴올린 영혼의 소리' 전을 16일부터 11월 17일까지 연다. 백 작가의 명태 연작 외에도 그의 1950년대 바다풍경과 배, 인물화와 정물화 등 7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백태호 화백은 대구 계성고와 일본 가와바다 미술학교를 수료했으며, 대륜중, 부산상업학교, 능인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동족상잔의 비극과 갈등을 겪은 작가로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적 질곡과 고통으로 점철된 개인사를 명태 그림을 통해 강렬하게 증언했다.

작가 백태호에게 그림은 내적 상흔을 다스리는 치유행위였다. 그는 붉은 하늘과 깡통을 든 거지를 그렸다는 이유로 당국에 잡혀가 고초를 겪었으며, 1979년에는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마비된 채로 1년을 병상에 누워 지냈다. 겨우 일어나 학교로 복귀한 뒤에도 온전한 작업을 할 수는 없었다. 걸음은 비틀거렸고, 굳은 손은 볼품없이 떨리기만 했다.

마비된 손을 풀기 위해 백태호는 수천 장의 크로키를 했고, 학생들에게는 세모와 네모, 동그라미를 끊임없이 그리도록 했다. '그림의 기본'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크로키는 굳어버린 그의 육신을 푸는 행위인 동시에 아직 화가의 손을 갖지 못한 까까머리들을 담금질하는 절차였다.

뇌출혈로 쓰러진 백태호는 마른명태의 절규를 들었고, 비상(飛翔)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자신이 본 명태의 비상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리고 딸(대구가톨릭대 백미혜 교수)에게 물었다.

"네 귀에도 명태 소리가 들리느냐?" "하늘로 날아오르는 명태가 보이느냐?"

작가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는 깊은 바다와 지느러미까지 말라버린 명태를 통해 시대적 질곡과 개인적 고통을 토해냈다. 명태의 울부짖음은 작가의 외침이고, 명태의 비상은 작가의 몸부림이었다.

백태호는 수평으로 누워만 있던 명태를 수직으로 세워 '날아오르는 명태' '소리치는 명태' 등 시리즈를 내놓았다. 한때 푸른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던 물고기가 이제는 마른 명태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통해 작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동시에, 소리치고 비상하는 명태를 통해 자신의 사투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백태호의 그림이 예술적 감동과 함께 전율을 일으키는 까닭일 것이다.

미술평론가 장미진은 "죽음을 예감하면서 마지막 에너지를 명태의 붉은 춤으로 승화시킨 작가, 명태를 통해 절망과 고통을 하늘로 열어간 작가, 붓 한 자루로 이토록 장렬한 진혼곡을 울러 퍼지게 하고 간 작가"라고 평했다. 033)681-7667.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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