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개항기, 천주교는 정부의 묵인하에 '박해시대'를 마감하고 신앙의 꽃을 피운다. 1886년 체결된 조'불 수호통상조약으로 천주교는 '승인'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전국에서 300여 건의 교난(敎難'종교적 충돌)이 일어날 정도로 토착민들과의 충돌이 잦았다.
그중 가장 큰 교난이 1901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신축교난(辛丑敎難), 세칭 '이재수의 난'이다.
당시 제주에는 오랜 박해 끝에 풀려난 천주교인들이 프랑스 신부들과 그들의 뒤에 있는 프랑스 군함의 힘을 빌려 온갖 횡포를 부렸다. 군수의 '통인'(심부름꾼)으로 일하는 이재수(사진은 영화 '이재수의 난' 주인공을 맡은 이정재)는 천주교인들의 행패를 저지하려는 사대부들 간의 전갈을 들고 다니면서 현실에 눈을 뜬다. 마침내 참다못한 민중이 분노하자 이재수는 기꺼이 지도자인 '장두'로 나서 제주성을 공격해 들어간다. 천주교인들은 제주성을 폐쇄하며 맞섰지만 결국 제주성은 함락됐고 700여 명의 교인들은 잔인한 죽음을 맞았다. 봉기가 진압된 후 이재수 등은 서울로 압송돼 1901년 오늘 교수형에 처해졌다.
천주교 측은 이 사건을 천주교 신자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근거해 신축교난이라 부르고, 주민들과 향토사학자들은 '이재수의 난'으로 부르면서 반봉건, 반제국 항쟁으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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