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러 한국 간 부모님 생각 감기약만 먹으며 버틴 아들
김영옥(50'여'대구 달서구 성당동) 씨는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아들 정광호(27) 씨의 건강했던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올 5월, 아들을 보러 2년 만에 중국에 간 김 씨는 광호 씨의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2년 전 한국에 올 때 건강했던 아들은 온데간데없고 온몸이 퉁퉁 부어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이 김 씨 앞에 있었던 것.
"정말이지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싶었어요. 눈은 퉁퉁 부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고 얼굴과 목의 왼쪽 부분이 모두 붓고 헐어 있었죠. 등에 난 두드러기를 보고는 더는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병색이 짙었어요."
◆'코리안드림'을 꿈꾸다
김 씨 가족은 중국 흑룡강성에서 건너온 중국 동포다. 중국에서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 정용춘(56) 씨에게 갑자기 당뇨병이 발병,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김 씨가 생계를 꾸려야 했다. 김 씨는 가족의 생활비와 남편의 병원비, 자녀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했다.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식당 일도 하고 가정부 일도 했지요. 하지만 딸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고민 끝에 한국에서 일하면 그나마 돈을 좀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지요."
김 씨 부부는 2011년 중국에서 관광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와 의정부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 정 씨는 공장 청소부로, 김 씨는 재봉 공장에서 일했다. 게다가 취업비자를 받기 위한 시험에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나서는 공부도 해야 했다. 8개월 뒤 취업비자를 발급받은 김 씨 부부는 그제야 마음 편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남편 정 씨의 당뇨병이 또 발목을 잡았다. 결국 한국에 와서도 생계는 결국 김 씨의 몫이 됐다. 그래도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딸도 무사히 졸업했고, 아들 광호 씨도 중국에서 취업하면서 걱정을 더는 듯했다.
"이제 돈을 조금만 더 벌면 남편 당뇨병도 치료하고 중국 가서도 여유 있을 만큼 노후자금도 마련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중국에서 갑자기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아들이 아프다는 거였죠."
◆"한국에 가면 아들을 살릴 수 있어"
올 5월 광호 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김 씨는 열 일 제쳐놓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김 씨는 몸져누운 아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얼굴은 퉁퉁 부었지, 온몸에는 두드러기가 나 있지, 게다가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근육의 힘도 약해져 있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림프종'이라고 하는데, 어느 부위에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광호 씨는 김 씨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광호 씨가 아프기 시작한 건 올해 4월부터였다. 목이 붓고 몸에 열이 나길래 처음에는 목감기라고 생각해 병원에서 감기약을 지어 먹었다. 그래도 낫지 않아 계속 더 강한 감기약을 먹었는데 목부터 시작한 부기는 얼굴 왼쪽 전체와 눈으로 퍼졌다. 결국 큰 병원에서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 씨는 광호 씨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하지만 광호 씨의 몸 상태는 점점 악화돼 갔다. 급기야는 왼쪽 눈이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
김 씨는 이와 관련해 한국에 있는 조카딸과 얘기하다가 광호 씨를 한국에 데려가 치료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한국의 의료기술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약해진 광호 씨를 어떻게 한국으로 데려가는가부터 문제였던 것. 이에 김 씨는 중국에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광호 씨의 몸을 어느 정도 회복시킨 뒤 한국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올 7월 초, 광호 씨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자 김 씨는 바로 광호 씨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일자리도 겨우 구한 마당에…
광호 씨는 7월 중순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생존 가능성이 80%로 높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암 치료도 받기 힘들 정도로 약해져 버린 광호 씨의 몸 상태가 발목을 잡았다.
"2주 전 광호는 그 주 내내 잠만 잤어요. 먹기만 하면 토하고, 입 안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헐어 있었어요. 컵도 못들 정도로 근육이 약했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조금이나마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은 회복했어요. 하지만 아직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아니어서 항암 치료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어요. 어서 빨리 치료해야 나을 수 있는데'''."
치료비도 문제다. 김 씨가 현재 버는 돈으로는 광호 씨의 치료비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든 치료비용만 해도 3천만원이나 된다. 광호 씨의 신분이 외국인으로 돼 있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내국인 환자들보다 병원비가 두 배 이상 많이 든다. 이 중 김 씨 부부가 일해서 모아둔 돈 1천100만원으로 일부는 해결했다. 하지만 더는 돈이 나올 곳이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
김 씨는 광호 씨를 데려오려고 직장도 그만뒀다가 병원의 도움으로 병원 내 청소 일을 하게 돼 매월 90만원 안팎을 벌고 있다. 남편 정 씨는 당뇨병에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짜 맞기 일쑤여서 여태껏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정 씨는 얼마 전 "돈을 벌어오겠다"며 다른 지역으로 떠난 상태다.
김 씨는 아들 광호 씨가 나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저렇게 앓고 있는 모습 보면서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올 눈물조차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이 살아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겁니다.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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