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남성우울증

입력 2013-10-07 07:47:59

"남자가 약해 빠졌다" 핀잔 걱정 …말 못하고 속앓이만

남성들은 두려움, 불안, 우울감 등의 감정을 호소하면
남성들은 두려움, 불안, 우울감 등의 감정을 호소하면 '약해 빠졌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을 받을 것으로 걱정한다. 스스로 만성피로나 탈진이라고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한 번쯤 우울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다는 게 정확히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건가요?'라고 묻고는 한다. 병적인 수준의 우울 상태에서는 슬픔과 같은 감정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이전에 이런 상태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것이 우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마치 자동차 엔진의 연료가 바닥난 것처럼 정신적인 에너지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를 의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으로 정의한다.

◆남성다움에 대한 선입견이 오히려 진단 막아

특정 스트레스 상황이나 피로가 쌓였을 때 일시적인 우울함은 정상적인 심리 반응이다.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가 해결되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나아지게 된다. 그러나 일시적인 우울감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우울한 느낌이 지속되면서 삶의 여러 측면에서 고통을 받는다면, 병적 우울증이 아닌 지 스스로 의심해 봐야 한다.

진단 기준(아래 표 참조)에 따라 우울증을 진단했을 때,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에 걸리는 비율은 10~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남성은 5~10%, 여성은 10~25%로 여성의 우울증 위험이 2배 높으로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현 교수는 "진료실을 찾는 우울증 환자들을 봐도 여성이 2배 정도 많게 느껴진다"며 "그러나 자살률은 남성이 2배 정도로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울증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견해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남성들이 제대로 진단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남성들은 병을 키워서 통증, 소화기계 증상, 성욕 감퇴나 과도한 성적 행동, 욱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 변화, 알코올 또는 일 중독 등의 증상을 더 자주 보이며, 스스로 만성피로증후군이나 탈진 상태라고 진단한다.

◆주위에서 인정하고 도와줘야

최근 정신건강의학계의 최고 권위학술지인 '미국의사협회지: 정신건강의학'에도 '남성 우울증은 여성에 비해 분노감이나 공격성, 짜증, 알코올 등의 물질 중독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 고통을 잊기 위해 위험한 활동에 더 몰두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결국 남성과 여성의 우울증 발병률은 거의 비슷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특히 중년 이후 남성 우울증의 원인과 관련해 최근 '남성갱년기'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여성 폐경기처럼 남성도 중년기 이후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서서히 줄면서 우울 증상 및 심한 감정의 기복과 짜증, 쉽게 화를 내는 증상과 피로 증후군, 발기부전 등의 성기능 저하를 보일 수 있다. 결국 신체적'정신적 변화 및 그 변화 대한 두려움, 허무감과 외로움이 복합돼 우울증으로 나타나며, 이를 극복하려면 스스로 인정하고 주위에 알려 도움을 청해야 한다.

김지현 교수는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알코올이나 격한 운동, 가짜 성기능보조제 및 혐오성 정력제, 심지어 성매매 등에 탐닉하는 일부 중년 남성들의 행동은 이러한 증상들을 이겨내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며 "주변 사람들도 남자다움에 대한 환상과 과도한 기대를 버리고,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용기를 내서 자기의 우울증상을 가족들에게 알렸는데도 이를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질책을 당하고 더 위축되는 환자도 종종 접한다"고 했다.

도움말=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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