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관계로 본 대구사람 입맛과 음식
직장에서 발령받아 3년째 대구에서 살고 있는 곽모(40) 씨는 친구'지인들과 식사 약속을 잡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 참신한 메뉴가 선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먹거리골목도 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그 메뉴가 그 메뉴다. 평소 이용하는 신용카드회사 등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 할인'무료 이용 쿠폰을 보내줄 때는 은근히 짜증이 난다. 대구에는 아직 매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주변 지역의 카페, 레스토랑 등의 로컬 서비스를 온라인 할인 티켓으로 구매해 이용하는 '소셜커머스'에서도 특이한 메뉴를 내놓은 음식점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곽 씨는 "좋은 사람들과의 맛있는 식사는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만 매번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한 끼 때우자는 식으로 결론이 난다"고 푸념했다.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 부족
대구 사람들의 입맛이 보수적이란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3만여 군데의 식당이 영업 중인데도 마땅히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말은 지역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과감히 새로운 맛을 선보이는 식당들도 '대박'보다는 실패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상당수 지역민들이 늘 익숙한 맛을 찾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는 음식의 수준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대구시가 지난 2006년 '대구 10미'(味)를 선정한 뒤 집중 홍보하면서 '대구에 맛집 없다'는 선입견은 많이 불식됐다. ▷따로국밥 ▷누른국수 ▷찜갈비 ▷뭉티기(생고기) ▷납작만두 ▷복어불고기 ▷무침회 ▷논메기 매운탕 ▷막창구이 ▷야끼우동(해물볶음우동)은 독특한 맛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회사원 박창원 씨는 "얼마 전 서울에서 출장 온 직장 동료들이 대구에서 유명하다는 막창집을 꼭 가보자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가격과 품질에서 모두 만족하는 듯해 뿌듯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새로운 맛을 찾는 '모험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대다수 요식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서울 등 타지방에서 큰 성공을 거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달구벌 공략'에 나섰다가 실패한 경우가 여럿 된다. 맵고 짠맛을 선호하는 지역민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레시피(recipe'조리법) 탓이 크지만 이색적인 요리에 도전하기를 꺼리는 소비자들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기질과 마찬가지로 입맛도 거의 변하지 않으며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관계자는 "대구시내 일반음식점 가운데 70%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데 메뉴는 과거에 비해 크게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지회의 경우 한식이 1만640개, 중식이 1천270개, 분식'기타가 1천240개, 일식이 850개, 양식이 270개 정도로 한식이 압도적으로 많다.
㈜핀외식연구소 관계자는 "대구의 경우 배달 위주의 생계형 음식점 창업이 많아 음식 메뉴가 다양해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수도권에서 인기를 끄는 메뉴도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후에나 유행하곤 한다"고 말했다. 120여 개의 식당이 밀집해 대구의 대표적인 먹거리타운으로 꼽히는 '들안길번영회' 관계자는 "1990년대 이후 들어선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비슷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며 "젊은 층을 겨냥해 퓨전요리를 내놓은 업소도 일부"라고 전했다.
◆토종이 좋아!
요식업계 전문가들은 대구만큼 토종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이나 해외 브랜드가 들어와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힘든 곳이 대구라는 평가다. 이들 업체의 대구 상권에 대한 분석이 부실했을 수도 있지만 대구시민들의 '충성도'가 남다른 덕분이라는 의견이 적지않다.
대표적인 업종이 커피전문점과 치킨점이다. '대구커피&카페박람회'의 조직위원장인 장상문 대구보건대 호텔외식조리학부 교수는 "대구는 인구 대비 커피전문점 수가 가장 많고 다수의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가 시작된 커피의 메카"라며 "시민들이 언론매체 등을 통해 어떤 브랜드가 대구업체인지 알게 되면 유난히 애착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치킨 브랜드의 경우 전국 320여 곳의 절반이 대구경북 출신으로 집계될 정도로 지역 업체들이 초강세다. 현재도 대구에 30여 치킨 브랜드가 시장을 지키고 있으며 올해 대구에서 전국 최초로 열린 '치맥 페스티벌'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 대구가 '치킨 종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피자 등의 음식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0년 화덕 피자 프랜차이즈를 시작해 대구'경북과 울산에 1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P사 김기영 대표는 "지역 정서를 잘 안다는 게 토종 업체들의 강점"이라며 "외지 업체들은 높은 인지도와 막대한 홍보비로 승부를 걸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입맛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구에서 1974년 창업, 현재 4개 빈대떡 식당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영숙 씨는 "워낙 오랫동안 지역에서 영업해오다 보니 단골이 자연스레 많다"며 "보수적인 성향의 지역민들은 새롭고 특이한 음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익숙한 음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젊은 층들은 굳이 지역 업체만 고집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및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대중화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유명 호텔과 외식전문회사의 임원을 지낸 김충호 영남이공대학교 식음료조리계열 교수는 "학생들이 SNS에 올리는 글들을 보면 서울에 있는 유명 맛집 탐방기가 많다"며 "KTX 등을 통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되면서 입맛도 보편화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대구에서 성공하려면?
음식점으로 성공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하다가 안 되면 식당이라도 열면 된다'는 인식은 아직 강하다. 대구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받는 음식점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달 2일 찾은 대구 대봉동의 한 일본식 선술집은 연어 카바야키, 우럭 앙카케, 등심 타다키 등 낯선 메뉴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가격은 1만~2만원대로 그리 싼 편은 아니었지만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이 음식점이 있는 중구 대봉도서관 인근은 최근 대구의 새로운 먹거리골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개업 3년째라는 이태운 씨는 "대구 소비자들은 좋은 음식점의 기준이 다소 까다롭다"며 "가격이 너무 비싸도 안 되고, 인테리어가 지나치게 화려해도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또 "전국 체인망을 갖춘 동종 업체들이 대구에 앞다퉈 진출했지만 살아남은 곳이 거의 없다"며 "대구시민의 정서를 고려한 서비스가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지난달 '웰빙 김밥전문점'을 낸 조현진 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김밥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데다 국산 햅쌀, 무항생제 계란, 국산 무로 직접 담근 단무지를 사용해 입소문이 났다. 하지만 조 씨가 직접 개발한 '모듬버섯 김밥' '반우쌈 김밥' '매콤멸치'견과 김밥' 등은 1인분에 3천~4천500원선이라 다소 비싼 편이다. 조 씨는 "개업하기 전 상권 분석을 통해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웰빙 트렌드에 맞는 음식을 내놓으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며 "고객들이 처음에는 낯선 메뉴에 주저하지만 두 번째 방문부터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메뉴를 주문한다"고 소개했다. 보수적인 기질에 따라 '새것'을 덥석 받아들이지는 않아도 일단 좋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변화를 적극 수용한다는 이야기였다.
'착한' 가격도 성공의 열쇠라는 지적이 많다. 대구 한 백화점에 있는 샐러드 바의 경우 점심시간에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용 비용(9천900원)이 합리적이라는 소문이 난 덕분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대구 경제가 계속 침체하면서 소비자들이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주요 고객층인 여성들을 위한 메뉴를 수시로 교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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