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에 진출한 알라딘, 수만 권의 책 저렴하게 팔아
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동. 이원호(75) 씨가 홀로 33㎡ 남짓 되는 헌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이 씨는 1987년부터 이곳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헌책방을 찾는 사람은 하루에 채 10명이 되지 않는다. 마수걸이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다. 헌책방 한쪽에 수북이 쌓인 희귀 서적과 백과사전, 잡지 등 손때 묻은 책들만이 이 씨와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다. "처음 서점 문을 열었을 때는 신학기 참고서 판매 수입으로만 일 년을 보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기 시작하면서 헌책방에 오는 사람이 없어…."
같은 날 오후 대구 중구 남일동 미도빌딩 지하 1층 알라딘 중고서점 대구점. 입구에 들어서자 990여㎡ 되는 널찍한 공간에 구역별로 정리된 수만 권의 책이 보였다. 군데군데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었다. 책장에 가지런하게 꽂혀 있는 책들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새책이라고 착각할 만큼 깔끔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부터 9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책 구경에 푹 빠져 있었다. 일본 서적을 보러 왔다는 정영희(91'대구 수성구 시지동) 씨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고 도시철도 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데다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어 이곳 서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대형 중고서점 도심 진출
대형 중고서점의 진출로 헌책방의 빈곤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1990년대 인터넷의 대중화와 대규모 인터넷 서점의 진출, 전자책(e-book)의 등장으로 대구 중구 동인동과 남산동 일대에 형성됐던 '헌책방 골목'은 옛 풍경의 하나로만 남게 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0~80년대 동인동은 '헌책방 세상'이었다. 공평네거리에서 대구역 지하차도까지 양쪽으로 빼곡히 헌책방이 늘어서 있었다. 인근 학교가 개학하면 밤을 새워 일 할만큼 정신없이 바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인터넷이 집집마다 깔렸고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대규모 인터넷 서점이 일반 서점 시장을 점령했다. 이어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었던 헌책방마저 타격을 입게 됐다. 헌책방이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 동인동에 남아있는 5개 헌책방만이 '옛' 헌책방 골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올 5월 헌책방 골목에 한차례 태풍이 몰아닥쳤다. 대구 도심 한가운데에 알라딘 중고서점 대구점이 들어선 것. 가뜩이나 좁은 헌책방 시장에 교보문고, 예스 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들마저 중고서점 사업에 뛰어들어 타격을 입은 터였다. 여기에 온라인에서만 헌책을 팔던 알라딘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올 5월 알라딘 중고서점이 대구 도시철도 중앙로역 인근에 문을 열었다. 2일 오후 3시까지 새로 들어온 책만 1천205권. 알라딘 관계자에 따르면 대구점에만 9만여 권의 책이 소장돼 있으며 주말 평균 1천200여 권의 책이 팔리고 있다. 교통의 편리성'쾌적함을 내세우는 대규모 중고서점에 소규모 헌책방은 맥을 못 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헌책방 살려야
일부 헌책방은 불황을 뚫기 위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동인동에서 2대째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성미(52'여) 씨는 지난 2011년 온라인 중고서점 운영을 시작했다. 김 씨는 "직접 매장에 와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대규모 인터넷 중고서점도 갖지 못한 수십 년 된 희귀 서적을 무기로 내세워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면 소규모 헌책방도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06년부터 동인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상균(65) 씨는 "헌책방 골목에는 대규모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보물 같은 책들이 많다"며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처럼 대구에 흩어져 있는 헌책방이 한곳에 모여 특화거리를 형성한다면 헌책방에도 승산은 있다"고 했다. 헌책방을 찾은 80대 남성은 "오래된 책에는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며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에서 나서서 헌책방이 사라지지 않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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