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신문 지면에 글쓰기를 한다. 한두 해 전에 썼던 칼럼을 찾아봤다. 읽고 있으려니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부 내 실수담이었다. 사람이 어쩌다 한 번씩 잘못해야 실수담인데, 이건 늘 벌어지는 일상이다. 강박증에 시달리듯 칼럼 제목도 '음악회를 다녀와서' '전시회를 다녀와서' '헌책방을 다녀와서' '신문을 펼쳐보고' '세미나를 다녀와서'처럼 연작으로 붙어 있었다. 직업이 예술 쪽 평론이고 기획 일을 하다 보니까 여기서 겪었던 일들을 반성문처럼 써놓았다.
여기서 나는 음악회에서 연주곡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사람들을 흉보기, 미술전시 오프닝 행사에서 당당한 척하기, 헌 책방에서 고작 몇 백원 때문에 책을 들었다 놓았다 망설이기, 내 이름을 잘못 전한 사람에게 삐쳐 행동하기, 신문지면에서 TV편성표부터 펼쳐 읽기, 학술 세미나 발표장에서 소리 내지 않고 과자 씹어먹기 등등 내 옹졸하고 소심하고 철없는 속내를 밝혔다.
영화관 이야기를 빠트렸다. 뉴에이지 정신수련회에서 벌어졌던 일은 차마 못 밝히겠고, 연극을 보러 간 날 겪었던 사건은 차라리 슬펐다. 그런데 극장 이야기는 해야겠다. 영화잡지사 기자 시절 일이다. 평일 낮 한 영화관에 갔다. 예술 영화(따라서 재미없는 영화)가 상영되던 그곳엔 관객이 몇 명 없었다. 거기에는 출강하는 대학 강의실에서 본 학생 커플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내게 인사가 없었다. 괜한 섭섭함보다 더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많은 자리 중에 내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달콤한 밀어를 속삭였다. 영화 예고편은 시작되었고 톰 크루즈가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한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이 민망한 자리에서 벗어나서 나도 저들도 해방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떠오른 기막힌 술수.
팝콘을 먹고 있던 제자 커플 쪽으로 손을 뻗어 팝콘을 가져왔다. '팝콘 향이 좋아서 뒤돌아보니 자네들이네. 난 딴 자리 갈 테니까 영화 재밌게들 보게나' 말하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제자들이 아니라 낯선 젊은 남녀였다. 이미 내 손엔 팝콘이 한주먹 쥐여 져 있었고 도로 내려놓을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그걸 그냥 먹었다. 내 탓이 아니었다. 컴컴한 극장 때문이었다. 지금도 억울한 건, 그 두 사람에게 나는 정신 나간 남자로 평생 기억되리란 사실이다. 소동은 그렇게 끝났고, 예술 영화는 시작되었다.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예술이 그렇다. 현대 예술은 아름다움을 넘어 진지한 개념의 각축장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본 무대보다 그 틈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소동에 더 관심이 간다.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소개할까 한다.
윤 규 홍(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klaatu84@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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