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에 기댄 애완견 마케팅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입력 2013-09-28 07:22:25

'양육비 폭탄'…사람들의 하소연

가족 구성원과 같은 반려동물로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사회의 시선은 애견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꼽히고 있다. 대구 한 애견 카페에 모인 애견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성일권기자 sugig@msnet.co.kr
가족 구성원과 같은 반려동물로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사회의 시선은 애견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꼽히고 있다. 대구 한 애견 카페에 모인 애견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성일권기자 sugig@msnet.co.kr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이제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만큼 국내 애견 인구는 크게 늘었다. 다섯 가구 가운데 한 집꼴로 개를 키운다는 게 관련 업계의 추산이다. 견공을 위한 각종 산업 역시 활황세다. 애완견을 위한 카페, 호텔, 장례식장 등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애견산업 시장 규모는 무려 2조원대에 이른다. 사회인식 변화 및 1인 가구 증가, 급속한 고령화 등에 힘입어 반려동물로 애완견을 키우는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덜컥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버려지는 유기견도 덩달아 늘고 있다. 애견인들의 남모를 고민을 들여다봤다.

◆체면이 뭐길래…

맞벌이 주부 김모(41) 씨는 몇 달 전 암컷 강아지 한 마리를 애견숍에서 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성화 탓이었다. 60만원이란 구입 비용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아이 정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길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강아지가 집 안 구석구석을 어지럽히거나 배설물을 치워야 하는 수고쯤은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양육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중성화(中性化)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을 다녀온 뒤에는 강아지가 애물단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김 씨의 하소연이다. 애견인 상당수는 동물의 발정기가 올 때마다 교미를 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생식기능을 제거하는 중성화 수술을 선택한다.

김 씨가 동물병원에 지불한 금액은 벌써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중성화 수술은 30만원 정도였지만 항문낭 제거 시술을 함께 하고 수술 전 혈액검사'호흡마취, 수술 후 진통제 주사, 2박 3일 입원비, 퇴원 후 통원진료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더했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김 씨는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데다 같이 간 딸아이의 눈치가 보여 이것저것 병원에서 권유하는 대로 다 했더니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렸다"며 "강아지에게 좋다는 약제를 쓰지 않으면 마치 애견인의 자세가 아닌 것처럼 비칠까 봐 솔직히 기분이 언짢았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생 정모(19) 씨는 수술 비용 때문에 소비자보호단체인 '대구소비자연맹'의 문을 두드렸다. 애견의 건강을 고려해 중성화 수술을 시켰지만 수술 몇 달 뒤 하혈을 해서 다시 검사했더니 수술이 잘못되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다른 병원에서 거액을 들여 재수술을 받았다는 정 씨는 "반려견을 가족과 같이 생각해서 수술을 시켰지만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며 "강아지에게도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워킹 맘'인 직장인 이모(43) 씨도 얼마 전 애견의 털을 깎아주기 위해 애견숍을 찾았다가 민망한 경험을 했다. 강아지에게 피부 습진이 있으니 치료해줘야 한다며 4만5천원짜리 연고의 구입을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이들이 바르는 약은 몇천원이면 되는데 애견용을 몇만원이나 받는 것은 지나친 상술 아니냐"며 "집에 비슷한 약품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왔지만 뒤통수가 계속 따끔거리는 듯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구 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애견에게 필요한 치료에 대해 설명해주면 고마워하는 고객도 있지만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며 "애완견에 대한 치료의 기준을 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은 강하다"고 지적했다.

강아지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사실 만만치 않다. 특히 비싼 의료비는 유기견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따라 최근 일부 보험회사에서 반려동물 보험을 내놨지만 보험료에 비해 보장 내역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초보 애견인 울리는 상술

값이 싼 애완견 품종을 비싼 품종처럼 속여 파는 행위도 숙지지 않고 있다. 새끼일 때는 품종을 쉽게 구분할 수 없고 기르면서 정이 들면 환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회사원 최모(47) 씨는 3년 전 대구 한 애견숍에서 생후 2개월 된 푸들 강아지를 45만원에 샀다. 털이 잘 빠지지 않는 품종이어서 아파트에서 키우기에는 제격인 데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분양을 부탁받은 강아지여서 '100% 순종'을 책임진다는 설명을 믿었다. 그러나 강아지는 순종과는 다소 다른 생김새로 컸다. 최 씨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같은 품종 강아지가 있으면 유심히 비교했지만 결국 속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퇴근 후 주인을 반기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상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악덕 상술을 규제할 대책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대구소비자연맹 측은 이와 관련, "일부 인기 품종에서 순종이 아닌데 배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특히 많다"며 "나중에 다른 애완견 품종으로 확인되면 환불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매매계약서에 따로 명기해 놓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너무 어린 강아지는 소비자들이 외관만으로 종을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 3개월령 이상 된 개를 분양받는 것이 비교적 안전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애완견을 구입했다 '반품 불가' 등의 횡포를 경험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개와 고양이에 한해 ▷구입 후 15일 이내 폐사 시 ▷구입 후 15일 이내 질병 발생 시 ▷계약서 미교부 시 등 세 가지로 나뉜 환불 규정이 있다. 하지만 판매업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거나 소극적인 보상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호소하는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애견 인구 급증에 편승, 속속 등장하고 있는 고가(高價)의 애견용품도 초보 애견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해외 유명 패션브랜드의 도그 캐리어(dog carrier'이동용 보관함)는 수백만원에 육박하는 데에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수십만원대 애견 의류제품 등을 내놓고 있지만 오히려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여전히 차가운 시선이 가장 큰 고민

하지만 애견인들의 가장 큰 불만은 여전히 차가운 사회의 시선이다. 지난해 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반려동물 관련 설문조사에서 반려동물을 양육 중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동물을 집에 혼자 두고 외출하기가 힘들다'(62.4%'중복응답)를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반려동물과 관련하여 필요한 시설로도 '호텔, 놀이방 등 외출 및 여행 시 맡길 장소'(61%'중복응답)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25일 대구 달서구의 한 애견 카페에 애견 '장비'(닥스훈트종'1세), '꺼벙이'(믹스견'3개월)를 데리고 나온 이우주(27'대학생) 씨는 "개를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나가면 목줄을 하고 있는데도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개를 발로 차는 시민도 있다"며 "얼마 전에는 개들이 시끄럽게 짖는다고 이웃집에서 강하게 항의를 해서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애견 카페 '포'의 서해린(42) 대표는 "애견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애견 카페에 온다는 손님이 많다"며 "개들은 사회성을 키울 수 있고 주인들은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애견 카페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애견을 혼자 오랫동안 집에 남겨두고 휴가를 갈 수 없는 애견인을 위한 시설도 그래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강릉 사근진해수욕장은 올해 처음으로 일부 구간을 애견 전용 해수욕장으로 지정, 9천 마리에 가까운 애완견이 다녀갔다. 또 경기도 이천 덕평자연휴게소는 지난 3월 애견놀이터를 개장한 이후 하루 200명이 넘는 이용객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방문했다. 울산시가 전국 처음으로 '애견 전용 운동공원'을 조성, 큰 호응을 얻은 뒤로 대구시도 유사한 시설 조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들도 애견 인구 급증에 맞춰 애견보호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워낙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불만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고객 편의를 위해 쇼핑하는 동안 개를 무료로 넣어둘 수 있는 케이지를 설치했지만 오히려 동물 학대가 아니냐는 항의를 종종 받는다"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구시 수의사회 백연 부회장은 "대구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아직 애견 관련 인프라나 배려심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주인이 키우다가 버리거나 집을 잃어버린 유기견들을 위한 보호소 마련을 수의사회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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