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흰머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젠 염색을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더 이상 버티기에는 흰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눈에 띕니다.
다른 이의 흰머리는 경륜도 묻어나고 낭만도 있어 보여 좋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머리가 하얗게 변하니 어두운 생각부터 들었지요. 늙음이 떠올랐으며 나이를 생각하게 됐으며 세월의 무상함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얼마 전 흰머리가 멋지게 어울리는 조르디 사발의 연주회에 갔었습니다. 그는 오래된 악기 '비올'을 애무하듯 어루만지며 연주를 했지요. '세상의 모든 아침'이란 영화에 나오는 바로 그 악기입니다. 기타처럼 맑고 첼로보다는 덜 진한 소리를 내는 비올이란 악기는 아주 매력적이었지요. 연주도 좋았지만 연주자의 흰머리가 악기의 음색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문제는 남의 흰머리는 멋있는데 내 흰머리는 그렇게 멋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알고 지내는 60대 중반의 갤러리 관장은 하얀 머리가 정말 멋지게 어울리는 여성입니다.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를 배경으로 흰머리의 관장이 '짜잔' 하고 나타나면 바로 그림이 되었지요.
그 관장은 흰머리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누구나 한번 보면 쉽게 기억을 한다. 또 푸근함과 친근감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희면 나이가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에 조금만 젊어보여도 '반전'의 효과가 크다"고 했지요. 그것도 아주 호탕하게 웃으며 말입니다.
중국의 소동파는 억지로 흰 머리카락을 뽑고 검게 물을 들이는 일은 백발에 꽃을 꽂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백발에 꽂히는 꽃은 그 사실만으로도 창피스러워 할 것이라고 읊었습니다. 늙음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지요.
사실 흰머리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흰머리를 상쇠하고 남을 자신감이 있어야 하며 늙음을 당당히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온 세월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가능해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흰머리는 이 계절과 아주 닮았습니다. 화려한 한때와 욕심과 세월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은 채 더풀더풀 제 길을 따라가는 가을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가을처럼, 그렇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