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모두 직시해야 할 보편적 복지의 진실

입력 2013-09-27 11:07:29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한 기초연금 축소는 예정된 것이었다. 나랏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경제 침체로 세수마저 줄어드는 반면 국민은 세금을 더 못 내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 지급'은 불가능한 목표다. 여기서 우리는 잘살건 못살건 똑같은 복지 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경제가 끊임없이 성장해 세금이 안정적으로 꾸준히 걷히거나 아니면 국민 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장기 저성장에 빠져 있고 지난번 세법 개정안 논란에서 보았듯이 국민은 증세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남유럽 국가들이 보여주듯이 국가재정의 파탄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대규모 실업과 소득 감소다. 빚으로 이룬 복지 천국이 복지 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우리가 목도한 보편적 복지의 진실이다. 영국 등 일찍부터 보편적 복지를 채택해 온 유럽 선진국들이 기존의 복지 정책에 수정을 가하고 있는 것은 의미하는 바 크다.

민주당은 "대국민 공약 사기" "히틀러의 말이 생각난다" 등의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지만 민주당의 약속은 박 대통령보다 더 '통 큰' 것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당의 복지 공약 규모는 5년간 197조 원으로 새누리당보다 66조 원이나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을 경우 과연 이들 공약을 한 치 어김 없이 실천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 같은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다. 많은 반발과 진통이 따르겠지만 여야 모두 보편적 복지가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국민에게 알리고 우리 사정에 맞게 복지 정책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한국의 복지 지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복지 확대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방향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 맞춤형 복지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복지를 확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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