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그릇 캐릭터 '태주' 실제의 나와는 달라 배역 힘들어
배우 고수(35)는 장태주를 향한 애착이 강했다. 지난 4개월 '황금의 제국'에서 힘들게, 악착같이 살려고 했던 '폭주기관차' 태주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태주는 고수에게 많은 것을 안겼다.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이후 4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왔던 그를 만났다.
"누구에게나 선도 있고, 악도 있죠. '황금의 제국'은 선악으로 구분하기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것 같았어요. 24부작은 처음이었는데 한 번도 밤샘 촬영이 없었어요. 살인적이지 않아(웃음) 기분 좋게 연기했어요."
뚜껑을 열기 전부터 관심을 받았던 SBS TV 드라마 '황금의 제국'. 지난해 화제 드라마 '추적자'를 쓴 박경수 작가의 신작이었던 이 드라마는 SBS가 엄청난 기대를 했던 작품이다. 박 작가는 고수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고, 고수도 박 작가를 향한 관심에 의기투합했다.
★로맨스'멜로 벗어나 새로운 모습 만족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에 이르는 한국 경제 격동기에 한 재벌가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싸움과 재력 쟁탈전을 그린 가족 정치극 '황금의 제국'.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이야기가 어려워 생각만큼 파급력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낮진 않았다. 마니아층의 몰입도도 높았다. 초반부터 본 시청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절대악에 대항하는 선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시청자의 분노와 감동, 재미를 전했던 '추적자'와는 달랐지만, 또 다른 면에서 관심을 높였다. 고수도 어렵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맛이 있었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이 먹고 먹히고, 또 어떤 짓을 해서라도 빼앗으려고 하는 상황은 저도 피곤하더라고요. 다른 연기자들도 감정 잡는 걸 힘들어했어요. 대본을 읽고 내려놓고를 반복했죠. 하지만 언젠간 참여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웃음)
고수는 시청률에 상관없이 만족하는 눈치다. 그간 로맨스나 멜로 작품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많이 봤으면 좋았겠지만 괜찮아요. 만족도요? 200%, 300%죠. 처음 의도한 대로 흔들리지 않고 잘 왔어요.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잘 드러난 것 같아요."
'황금의 제국'의 묘미는 성진 그룹 일가족과 판자촌 출신 태주가 '황금의 제국' 주인이 되려고 서로 뒤통수를 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상황이었다. 매회 반전을 거듭하며 제왕의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시청자들은 궁금해했다. 고수는 '작가님이 뒤통수치기의 달인'이라는 표현에 폭소했다. 인정한다는 의미다.
"다른 작가님들도 다 힘드시겠지만, 이런 소재로 글을 어떻게 이렇게 이끌어 갈 수 있는지 대단한 것 같아요. 반전이 정말 많아요. 대본이 진짜 재미있었죠. 후반부에 '쪽대본'이라 기다려야 하긴 했지만요.(웃음) 또 야외 촬영이 거의 없었고, 세트 촬영을 주로 했죠. 세트에서 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적절한 상황에서 고전을 이용해 던지는 대사도 주목받았다. 특히 가족끼리 즐겁게 식사해야 하는 식탁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툭툭 던지는 말들은 긴장감을 높였다.
"처음에는 그 식탁이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힘들기도 했고요. 가족들의 대화가 아니라 서로 눈치 보고 거래가 오간 장소잖아요. 대사도 길고 촬영도 오래했죠. 끝나면 '다음엔 누가 없어질까?'라는 이야기도 많이 했었죠. 저도 없어졌지만요."(웃음)
후반부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태주에게 있었다. 힘없이 당하고만 있던 우리네 사람들과 비슷하던 태주는 두 번의 광기를 표출했다. 극 초반 김 의원(이원재)을 죽이고 윤설희(장신영)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던 그는 점점 욕망을 표출했다. 난관에 이르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용역 깡패를 그도 똑같이 동원해 대응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강조하고 지키려 했던 신념과 원칙이 깨지고 말았다. 돈이라는 권력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태주는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다. 고수 역시 고민이 많았다.
"솔직히 태주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갈 데까지 갔던 것 같아요. 안타까운 마음은 있네요. 그래도 장태주라는 인물을 통해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이라면 선과 악한 마음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고수는 태주가 자신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라고 거리를 뒀다. 돈을 많이 갖는 것도 부럽지 않다. "태주가 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태주는 너무 큰 그릇 같아요. 생각하기도 쉽지 않은 큰 야망을 품고 있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었죠."
그는 "난 사실 주식의 주자도 모른다. 아예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어려운 경제 용어를 많이 배웠다고"는 생각하는데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짚었다. 경제에 더 관심이 생기게 됐냐고 물으니 "에이~ 그때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말에 새 영화…전도연과 부부로
"돈에 대한 욕심이나 욕망 같은 게 생겼느냐고요? 똑같아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죠. 전 재테크도 아니고 그냥 저축해요. '자산을 엄청나게 불려야겠다' 같은 건 잘 몰라요."(웃음)
'황금의 제국'을 통해 장르적인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고수. 늘 고민하는 연기자였던 그는 "오랫동안 기억할 작품을 했다"고 좋아했다.
고수는 연말 개봉 예정인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또 다른 변신을 한다. 남편 후배에게 속아 마약을 운반하게 된 평범한 여자가 프랑스 공항에서 붙잡혀, 대서양 외딴 섬의 감옥에 갇혔다가 3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오기까지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 전도연이 아내, 고수가 남편으로 나온다.
"저는 늘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요. 조금씩 발전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앞으로 더욱 넓어질 저를 기대해주세요."(웃음)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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