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해군 출신 합참의장

입력 2013-09-26 11:21:09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697년부터 1797년까지 무려 1천 년 이상 존속했다. 작은 국가인데도 그처럼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해상 무역을 통한 경제적 번영과 강력한 해군력, 교활할 만큼 능란한 외교 덕분이었다. 베네치아는 합종연횡이 난무하던 유럽의 국제 관계에서 강한 해군을 바탕으로 캐스팅 보트를 쥐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독교 세력의 적인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손을 잡기도 했는데 해군력이 취약한 오스만 튀르크로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제노아도 해군이 강해 한동안 베네치아의 라이벌이 될 수 있었다.

역사를 주도했던 나라들을 살펴보면 육군의 전력은 필수적이었고 해군력도 고려해야 할 조건이었다. 중세 이후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두고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며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꺾음으로써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오스만 튀르크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지중해의 제해권을 다투면서 해적 두목을 지휘관으로 삼아 약한 해군력을 보완했다. 이와 상반되게 프랑스는 강대국이면서 유럽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갖고 있었으나 해군력이 두드러지게 강하지는 않았다. 중농주의적 전통이 강하고 농업이 발달해 굳이 해상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해군의 전통이 길다. 통일신라시대 때 장보고는 청해진을 근거지로 바다를 장악,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 무역을 활성화했다. 고려 말의 무장 최무선은 화약을 발명,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바다에서 격퇴했고 조선시대의 이순신은 창의적인 거북선을 만들고 뛰어난 전술로 왜군을 수장시켰다. 삼면이 바다에 열려 있는 지형상 수군의 양성은 반드시 필요했으며 국토방위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최윤희 해군 참모총장이 해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합참의장에 내정됐다. 육'해'공군, 해병대의 합동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라지만 육군 참모총장 출신이 맡던 관행을 깬 파격적인 인사다. 안보 진용을 육군 출신이 독점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과 함께 그에 대해 육'공군과의 공동 작전 경험이 적어 전문성에 우려를 표하거나 육군 출신이 대거 포진한 합참의 장악력에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삼군 합동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합참을 잘 이끌어 파격 인사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책임이 그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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