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의 줌 인] 내가 아는 선희, 남이 아는 선희, 진짜 선희

입력 2013-09-26 07:24:34

홍상수 영화의 힘

# 메이저 영화 틈서 선전 '우리 선희'

# 셋 다 그녀를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 속물 근성 가득한 일상과 닮은 영화

길고 길었던 추석 시즌의 절대 강자는 '관상'이었다. 하루에 80만, 9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다가 마침내 23일, 7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거의 경쟁작이 없었던 데다가 1천200개가 넘는 압도적인 스크린을 차지하면서 브레이크 없는 흥행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1천만 관객 동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여름 한국영화가 엄청난 흥행세를 이룰 때 선두에 섰던 '설국열차'도 결국 930만 명 선에서 정차했는데 '관상'이 이 기록을 넘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홍상수의 신작 '우리 선희'가 잔잔한 흥행을 하고 있다는 것. 이달 12일 개봉해, 개봉 10일째 3만 관객을 돌파했다. 19일은 하루 관객이 5천 명 가까이 들었다. 개봉관이 20개에서 30개 내외인 영화로서는 매우 빠른 흥행 속도인데, 이는 홍상수의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빠른 것이다. 드디어 '우리 선희'는 23일 4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금의 추세라면 10만 관객도 가능해 보인다. 우리는 100만, 1천만 같은 큰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지만, 10만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독립영화계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숫자이다.

이제까지 홍상수의 영화는 큰 흥행을 기록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홍상수 자신도 큰 흥행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최소의 스태프로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는 홍상수, 그의 영화 속 인물도 점점 줄어들고, 촬영 장소도 점점 한정되어 간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규모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홍상수와 비슷한 상황, 즉 독립영화적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김기덕은, 홍상수와 달리 규모도 좀 크고 흥행도 더 된다. '피에타' 같은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수상 이후 국내에서도 꽤 흥행을 했었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마니아의 영화'였다.

홍상수의 영화는 인간의 비열한 욕망을 비굴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남성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속물 근성으로 가득한 남성들이 하는 행동은 거의 비슷하다. 여성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 흥미롭게도 남성들의 그런 욕망을 알고 있는 여성은 그 욕망을 이용해 게임 같은 연애를 한다. 그 속된 욕망의 내용이 홍상수 영화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처연해진다. 동물적 욕망을 지니고 있는 남성의 속된 성향에 비굴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술을 마시고 싶어진다.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술을 통해 생활의 긴장도 풀고 술의 힘을 빌려 큰소리를 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술을 마시고 싶지가 않다. 술에 취해, 또는 술의 힘에 의지해 비열한 욕망을 나열하는 것이 몹시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상수의 영화는 이런 내용 때문에 예술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홍상수의 영화는 내용의 영화라기보다는 스타일의 영화이다. 비슷한 상황이 미묘한 차이를 두고 반복되면서 그 대구와 대조, 비교와 차이를 읽는 맛이 있는 영화가 홍상수의 영화이다. 그 차이를 통해 인생의 미묘한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즉, 그의 영화는 형식을 통해 삶의 본질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이다.

'우리 선희' 역시 그러하다. 선희라는 한 여성을 두고 벌어지는 세 남성의 이야기. 첫날 선희는 전 남자친구이자 갓 데뷔한 감독 문수와 술을 마신다. 다음 날 선희는 미국 유학을 위해 소개서를 써준 최 교수와 술을 마시고, 그 다음 날에는 학교 선배이자 과거에 사연이 있었던 영화감독 재학과 술을 마신다. 이 세 술자리는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 같음과 차이들. 게다가 선희와 만난 날 문수는 재학을 찾아가 함께 술을 마신다. 이제 복잡해지는 관계들. 마지막은 창경궁에서 선희를 만나러 온 세 남자가 명정전으로 올라가며 선희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희는 과연 누구인가? 셋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우리 선희. 게다가 그들이 선희에게 해준 충고도 비슷해 별 의미가 없다. 이렇게 홍상수의 영화는, 매우 쉬운 상황을 반복하게 하고 있지만, 결코 쉬운 영화가 아니다.

사실 홍상수의 영화를 이렇게 분석하는 것은 별 재미가 없다. 그의 영화는 분석 이전의 감상의 영화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 무엇인가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세트를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면서, 술자리의 그 무수한 욕망과 허상을 진짜처럼 제시하면서 만들어진 그 영화에는, 어느 순간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캐릭터와 무엇이 같고 다른가?

홍상수의 영화는 끊임없이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선희' 역시 마찬가지다.

가을의 풍경을 뒤로하면서 롱테이크로 그 술자리를 길게 잡았을 때, 그 세속적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비속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잘난 체하지 말고, 까불지 말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된다. 영화 한 편이 이 정도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면 그 역할을 다한 것 아닌가? 무엇이 더 필요하랴!

강성률<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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