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실향

입력 2013-09-24 11:06:24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 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정말 찾아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 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김규동'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시인 김규동은 1925년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두 누이, 남동생을 북에 둔 채 6'25 직전 월남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꿈에서라도 그리운 어머니. 그는 이 아픔을 오롯이 시에 담았다.

그의 또 다른 시 '천'(天)이다. '규천아, 나다 형이다'(전문)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보고픈 동생은 한 줄 시로 풀어냈다. 시인 김규동은 끝내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시는 그저 꿈일 뿐이었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리다 2011년 타계했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 9천35명이다. 이 중 숨진 사람이 5만6천544명이다. 생존한 신청자 중 80대가 40%, 90대도 9%다. 북에 남겨진 가족을 그리다 숨지는 사람이 한 해 4천 명이다.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 3년 이내에 신청자 중 사망자 비율은 50%를 넘어선다.

북이 25일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무작정 연기해 이산가족 가슴에 못을 박았다. 이번 명단에는 90대 이상의 고령자가 28명이나 됐다. 정부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초고령자에 대한 배려를 했기 때문이다. 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김영준(91) 씨는 상봉을 고대하다 추석인 지난 19일 숨졌다.

남북은 2000년 이후 18차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가졌다. 이를 통해 2만 1천734명만이 가족을 만났다. 지금처럼 더디게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된다면 80'90대 신청자들은 가족 얼굴 한번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의 정은 이념보다 훨씬 진하다. 가족을 만나게 하는 것이, 친척을 보게 하는 것이, 정치적 흥정거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은 이산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인질로 삼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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