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뺀 결혼식' 정말 좋아요

입력 2013-09-21 08:00:00

지인만 초대 '비공개 식장' 허례허식 쏙∼, 큰돈 안들여

우리나라의 결혼은 간소할까? 정답은 '노'다. 결혼식 장소와 뷔페 식사 가격, 하객 수는 물론 예물과 예단까지, 결혼 준비 자체가 양가의 부와 인맥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니 주변 시선 탓에 '돈 쓰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가수 이효리의 결혼식이 화제가 됐다.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이효리는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개로 제주도 별장에서 톱스타치고는 간소한(?) 결혼식을 했기 때문. 돈 쓰는 결혼 대신 거품을 뺀 결혼을 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결혼 준비부터 '스트레스'

지난달 결혼한 직장인 백모(29'여) 씨가 결혼 준비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청첩장 돌리기'였다. 별로 친하지 않은 회사 사람들에게도 청첩장을 돌리며 "저 결혼합니다"라고 알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청첩장을 주지 않으면 '섭섭하다'고 욕먹을 것 같고, 주면 꼭 축의금 달라고 하는 것 같은 '애매한 상황'이 싫었지만 회사 분위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한테도 청첩장을 전달했다. 또 연락이 뜸해진 친구에게도 갑자기 전화해 "나 결혼해"라고 말하는 것도 미안했다. 백 씨는 "요즘 휴대폰으로 모바일 청첩장을 돌리기도 하지만 이건 친한 친구끼리 해당하는 일"이라며 "안면만 있는 회사 사람이나 학교 동창, 어른들에게 괜히 보냈다가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친한 친구들만 초대해 안주고 안받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고 회상했다.

2년 전 결혼한 전업주부 이모(28) 씨는 결혼 준비를 하며 허례허식이 많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가 시댁에 이바지 음식을 보내는 데 쓴 돈은 200만원 정도. 양가 상견례 때 시어머니는 "다 먹지도 못하는 이바지 음식 사지 말고 '간단하게'하자"고 말했지만, 그 '간단'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딸을 처음 시집보내는 친정 엄마는 "밉보이기 싫다"며 음식 솜씨 있는 친척들을 불러 모아 각종 전 요리와 찜, 생선 요리를 다 만들었고, 전복과 과일도 최상급으로 보냈다. 이 씨는 "손이 큰 시어머니가 함을 보낼 때 여러 가지 음식을 넣어 보내자 엄마도 어쩔 수 없이 준비한 것"이라며 "이바지 음식은 좋은 날 이웃과 음식을 나누라며 있는 전통인데 요즘에는 나눌 이웃도 없고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한다. 어른들은 전통이고 문화라며 해야 한다고 하시지만 남들 다한다고 모두 따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간소한 유럽의 결혼 문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결혼식을 보며 가장 놀란 점은 무엇일까. 프랑스에서 온 앙투앙 라사타(26'영남대 4학년) 씨는 "하객들에게 돈을 받고 티켓(식권)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인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그는 하객들이 도착하자마자 흰 봉투를 꺼내 신랑 신부 측에 전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라사타 씨는 "또 돈을 준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기록했다가 나중에 그만큼 갚아준다는 말을 듣고 축하금이라기보다 '대출'(loan)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돈 대신 신랑 신부에게 필요한 선물을 사서 결혼식 날 가져가는데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의 결혼 문화가 조금 충격이었다"고 덧붙였다.

라사타 씨는 "프랑스 결혼은 한국보다 간소하고 싼 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인 대부분 결혼식 장소로 가까운 시청을 이용해 식 자체에 큰돈이 들지 않는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성당이나 교회를 찾아 결혼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시청 결혼식보다 비용이 조금 더 든다. 그는 또 "결혼식을 하면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데 가장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한국처럼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기저기 큰돈이 들지 않는다"며 "함께 저녁을 먹고, 밤늦게 파티를 즐기고, 결혼식 시간은 한국보다 오래 걸릴지 몰라도 비용은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유럽의 커플들은 결혼에 얼마를 투자할까. 스페인의 대표 통신사인 EFE가 최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스페인 커플이 결혼 준비에 사용한 비용은 평균 1만2천590유로, 우리 돈로 약 1천810여만원이었다. 수도 마드리드에 사는 커플들은 1만6천275유로(우리 돈 2천350여만원)를 지출해 전체 평균보다는 다소 높았다.

또 지난해 스페인에서 결혼한 커플 중 시청에서 결혼하는 이들이 예년보다 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만큼 결혼식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는 '합리적인' 커플들이 늘고 있다는 것.

스페인에서 온 또닌 데 카스트로(24) 씨는 "스페인 사람들은 태어나서 딱 두 번 성당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은 세례를 받을 때, 나머지 한 번은 결혼할 때"라며 "요즘에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젊은 사람들도 줄고, 교회 결혼식이 시청 결혼식에 비해 돈이 많이 들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결혼 준비에는 '억' 소리가 난다.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결혼 평균 비용은 남성이 9천588만원, 여성이 2천883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남녀의 결혼 평균 비용을 합치면 1억2천471만원으로, 스페인 커플보다 1억원 넘게 지출했다. 연구팀은 이 보고서에서 "신랑 및 신부, 양가 집안의 총 결혼비용은 약 1억원 전후로 이 같은 결혼 비용이 앞으로 결혼생활 유지와 출산력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봐 우려된다"며 "또 가장 부담스러운 비용인 '신혼주택' 마련과 '신혼살림' 구입비를 감소시킬 수 있는 정책적'범국민적 노력과 함께 결혼식비와 신랑 측 예단 및 배우자 예물 등을 폐지하거나 간소하게 하도록 혼례 문화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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