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색다른 경험

입력 2013-09-21 08:00:00

얼마 전 우연찮게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갔다 차를 닦게 됐지요.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시작한 것이었으나 수건으로 닦고 손으로 만지다 보니 마치 애마를 쓰다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지요. 내친김에 자동차 밑까지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세차장 기계나 밀대가 아닌 손으로 직접 닦아보니 그동안 탈 없이 주인을 실어 날라준 차가 정말 고맙기도 하고 사랑스러워졌습니다. 그날 이후 괜히 차를 한 번씩 툭툭 치며 말을 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애정이 생긴 것이지요.

그때 살짝 알 듯했습니다. 원고지를 쓰다듬으며 펜으로 글을 쓰는 문인들의 마음 말입니다. 작가 조정래 최인호 김훈은 아직도 펜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최인호는 펜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한 자 한 자 소설 쓰는 정성은 펜이어야 가능하다'며 정성을 강조했지요. 소설가 김훈 역시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며 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육필원고를 쓰다 컴퓨터 작업을 시작한 소설가 박범신은 '아무래도 작업하기에는 컴퓨터가 편하기는 한데, 조금은 인정이 없는 것 같다. 간혹 피부를 쓰다듬는 마음으로 육필로 원고를 쓴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육필원고는 스킨십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행위입니다. 종이도 갖다 놔야 하고 연필도 준비해야 합니다. 더욱이 수정도 쉽지 않습니다. 편지는 더합니다. 보내려면 우체통을 찾아야 하고 우표도 붙여야 하지요.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은 이처럼 시간과 정성을 요구합니다. 속도도 늦습니다. 하지만 손길의 힘은 그 어떤 말이나 기기가 주지 못하는 울림과 감동을 전달합니다. 깊은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손으로 쓴 오래된 편지의 감동이 아름다운 소설 한 편의 그것 못지않게 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을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한번 살며시 잡아보십시오. 체온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덩달아 일렁일 것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오늘 밤 펜을 꾹꾹 눌러가며 마음이 실린 편지를 한 번 써보면 어떨까요.

문득, 누군가에게 긴긴 편지를 써보고 싶은 가을 오후입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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