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리움 꼭꼭 눌러담아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입력 2013-09-21 08:00:00

가을추억 새기는 손편지의 매력

올가을에는 진솔한 마음을 전하는 손 편지 한 통을 써보면 어떨까. 찾는 이가 줄면서 대구경북의 우체통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올가을에는 진솔한 마음을 전하는 손 편지 한 통을 써보면 어떨까. 찾는 이가 줄면서 대구경북의 우체통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가을추억 새기는 손편지의 매력

독자 여러분, 한가위 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오랜만에 다녀온 고향은 어떠셨나요? 좋은 사람들과 넉넉한 정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며칠 뒤면 추분(秋分'올해는 9월 23일)이네요.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속담처럼 조만간 가을 분위기도 완연해지겠지요. 라디오에선 벌써 추정(秋情)을 자극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휴의 마무리는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이 어떨까요? 추석에 잠깐 뵙고 온 부모님께 올리는 감사편지도 좋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지인에게 전하는 문안편지도 좋겠지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훈훈한 마음을 가득 담아서요.

◆우체국 가본 지가 언제더라…

편지라고 하면 주옥같은 시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고 노래했던 유치환의 '행복',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고 읊은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이 입안을 맴도는군요.

유행가를 흥얼거리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가을 편지'패티김)나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서울 서울 서울'조용필)이 생각나실 겁니다. 또 486세대라면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김광석)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가을 우체국 앞에서'윤도현)가 가슴에 와 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을 들고 우체국을 찾은 기억은 대부분 가물가물하실 겁니다. 실제로 대구경북을 관할하는 경북우정청에 따르면 소속 집배원이 우체통에서 수집한 우편물의 양은 2009년 924만3천여 통에서 지난해 431만6천여 통으로 급감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등기'소포 등을 제외한 국내 '보통우편물'은 연간 41억 통 수준으로 2002년 52억 통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 추세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손편지 외에도 신용카드사'은행'백화점 등이 고객에게 보내는 발송물 등이 다수 포함돼 있어 손편지는 정말 '천연기념물'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편사업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관련 인프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의 우체국 수는 2009년 478곳에서 올해 469곳으로 줄었고, 빨간 우체통은 1989년 7천998개에서 올해 2천364개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우체통에 쓰레기를 집어넣곤 해 우정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우표 판매량도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2009년에는 대구경북에서 2천393만6천여 장이 팔렸지만 지난해에는 1천547만1천여 장에 그쳤다네요. 경북우정청 김연실 홍보팀장은 "우표 판매량 감소에는 손편지의 '실종' 외에도 요금후납'별납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스마트폰의 보급 확대 등 정보통신수단의 진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며 점점 메말라가는 세태를 아쉬워했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편지의 위력

여러분도 색 바랜 낡은 편지 한 꾸러미씩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계시지요? 이따금 꺼내 읽으면 잊고 살았던, 지나간 세월이 그리워질 때도 있을 테고, 풋풋한 우정을 나눴던 옛 친구들이 문득 보고 싶어지기도 할 겁니다.

편지를 모아 책을 내는 것도 추억을 나누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홍만표(50) 경북우정청장은 몇 해 전, 선친의 칠순 잔치 대신 선친으로부터 받았던 편지들을 묶은 에세이집을 사비로 펴내 주위 분들에게 전했습니다. 봉화 출신인 그가 대구에서 유학하던 고교 시절, 엇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는 부성애(父性愛) 가득한 편지들을 보면서 공감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홍 청장은 "전화조차 이용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한 달에 한 번꼴로 선친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며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말씀으로 다독여주신 편지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단 한 줄로 된 편지 하나를 적어봅니다. '意志(의지)와 勇氣(용기)로써 最善(최선)의 努力(노력)을 바란다. 1979.12. 5 애비로부터.'

마음을 전하는 편지의 위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국제무대에서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으로 꼽히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그를 잘 아는 한 고위 외교관은 "연말연시에 반 총장이 2천 명 가까운 국내외 지인들에게 손수 편지를 쓰는 것으로 안다"며 "외교부 재임 시절에는 '발탁 승진'을 사양하다 결국 승진하게 되자 부처 내 선후배, 동기 100여 명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담은 친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귀띔했습니다. '인간관계의 달인'이란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장승포우체국'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연애편지만큼 가슴 설레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여러분도 한껏 멋을 내느라 만년필로 밤새도록 고쳐 쓴 편지 한 통을 우체통에 떨리는 마음으로 넣었던 추억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젊은 층에서도 연애편지는 이벤트에 가깝지만 위력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네요.

대학생 이가림(20) 씨는 올해 3월 해병대에 입대한 남자친구에게 7주간의 기초훈련 동안 100통이 넘는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페이스북과 같은 SNS나 전화로도 수시로 연락하지만 남자친구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였답니다. 이 씨는 "말로는 하기 힘든 감정을 편지로 표현하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며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군에서 복무 중인 오빠에게 한 달에 한두 번 편지를 띄운다는 대학생 김혜빈(19) 씨도 손편지를 적극 추천합니다. 특히 오빠가 여자친구가 없는 탓에 동생의 편지를 받으면 무척 좋아한다는군요. 김 씨는 "연년생이라 입대하기 전에는 많이 싸웠지만 요즘은 휴가 때마다 같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며 "손편지의 소중함은 소통"이라고 자랑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손편지의 감동은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선 뒤 답장을 기다리는 간절함도 행복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아련한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잃은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정당국은 매년 다양한 편지 쓰기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편지 쓰기의 즐거움이 '화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지요.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편지 쓰기는 정서 함양, 인성 교육뿐 아니라 우리말 교육의 기본이 되겠지요.

경북우정청은 10월 15일까지 '2013 대구경북 초'중'고 편지쓰기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작품 주제는 제한이 없으며, 분량은 초등학생은 편지지(A4용지) 1매 이내, 중'고교생은 편지지(A4용지) 2매 이내입니다. 특히 손글씨에는 가산점이 주어지고 응모한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도 보내준다고 합니다. 작성한 편지는 동대구우체국 사서함 55호(우편번호 701-700) 편지쓰기 담당자 앞으로 보내면 됩니다.

대구경북인들의 글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애절한 내용의 '원이 엄마의 편지'는 안동의 한 사대부 무덤에서 1998년 출토된 이후 소설'영화'오페라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전국 14만8천여 명이 응모한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에서 대구 대성초교 3학년 왕지현 양이 초등부 저학년 대상(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올해 대회에서는 대구경북이 응모율 44.0%, 수상률 35.5%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하늘나라로 간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의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왕 양의 편지를 보시면서 이 추야장장(秋夜長長)한 계절에 손편지 한 통을 써보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아버지. 하늘나라도 여기만큼 더우세요? 저는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봤어요. 아버지도 저 꼬맹이 한 살 때만 보셨죠? 저 벌써 열 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중략) 하지만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아요. 그냥 아빠 얼굴을 한 번만 봤으면 좋겠어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오빠랑 저랑 엄마랑 많이 생각해주세요.(중략) 아빠! 꿈속에서 저와 우리 가족들에게 한번 나타나셨으면 좋겠어요. 아빠 얼굴도 볼 수 있고 또 '아빠, 아빠, 보고 싶은 아빠' 이렇게 불러보고 싶어요.(중략) 아버지 사랑합니다~♡.'

※추신: 보통우편 요금은 현재 300원입니다. 엽서 한 통은 270원이고요. 우체국에 갈 시간이 되지 않으면 '국내 통상우편물 방문접수제도'를 이용해보세요. 서울과 대구 등 특별'광역시에서는 우체국 직원이 신청인의 집이나 회사를 방문해 우편물을 접수한답니다. 우편고객만족센터(1588-1300)나 인터넷 우체국(www.epost.kr)을 통해 신청하시면 돼요.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