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숨은 길 대부분 사유지, 땅주인 설득하고 또 설득
길은 스스로 생기지 않는다. 많은 이가 그곳을 걸어야 비로소 진짜 길이 된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이하 대구 녹소연) 사무국장인 오병현(39) 씨는 지난 2년간 팔공산의 숨겨진 '길'을 찾아다녔다. 그가 한 일은 새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는 길을 찾아 코스를 짜는 일이었다. 길을 찾으려면 먼저 사람을 만나야 했다. "팔공산 사는 주민들, 사찰 스님들, 수십 년 팔공산을 오른 전문가들, 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길을 물었어요. 팔공산은 사유지가 많은데 코스를 짜려면 지주들을 만나서 동의를 구해야 해요. 그래서 팔공산 올레길은 '길 사업'이 아니라 '사람 사업'이에요." 팔공산 올레길 12코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길을 찾으려 사람을 찾다
10일 오후 대구 동구 지묘동 신숭겸 장군 유적지 앞. 이곳은 팔공산 올레길 2코스 '한실골 가는 길'의 시작점이다. 등산복과 등산화, 등산 모자까지 갖춰 입고 약속 장소에 나타난 오 씨는 영락없는 프로 등산가 모습이다. 그는 "기자님도 운동화를 신어서 다행"이라며 껄껄 웃었다. 인터뷰는 그가 만든 길에서 진행됐다.
오 씨가 처음부터 팔공산에 올레길을 만들겠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무렵 저탄소 녹색 환경을 중시했던 대구 녹소연에서 대구를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들자고 기획한 것이 시작이었다. "대구는 도로가 잘 정비된 도시라서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다녀요. 바꿔 생각하면 사람들이 걷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죠. 녹소연은 예전부터 걷기나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 운동처럼 승용차 줄이기 운동을 해왔는데 이를 지속하려면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어떤 코스가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죠."
그래서 걸을 수 있는 길로 선택된 장소가 팔공산이었다. 왜 팔공산이냐는 질문에 오 씨의 답변은 짧고 명료했다. "대구 시민들에게 팔공산은 재산 같은 곳입니다." 선덕여왕 이야기가 있는 부인사, 임진왜란 역사가 담긴 동화사 등 팔공산은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라는 것. 또 아침저녁,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잘 보존된 생태도 걷기 코스로 그만인 조건이다. 그는 "길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팔공산은 정보와 콘텐츠가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팔공산을 찾은 것은 2009년, 팔공산녹색연합문화센터 센터장이 되면서부터다. 동구 불로동에 사무실을 두고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오 씨가 애착을 가지는 코스는 동화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7코스인 '폭포골 가는 길'. 이 코스를 만드는 데 꼬박 두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동화사에서 시작되는 길을 찾기 위해 그는 아침마다 동화사에 출근했다. 점심은 항상 공양간에 들러 절밥으로 해결했고, 공양간 스님과도 친해졌다. "절에는 일반 신도와 팔공산 문화해설사들이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있거든요. 매일같이 점심을 절간에서 먹고 산에 올라가니 스님들이 저도 문화해설사로 오해하시더라고요. 하하."
코스 정하는 데도 엄격한 룰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고 끝나야 하며, 길에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또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도 코스의 필수 조건. 오 씨가 먼저 걷고 코스를 찾은 후 일반 시민들을 불러 올레길 '검증 작업'도 거쳤다. 함께 걸으면 몰랐던 사실을 새로 발견하기도 한다. 혼자 걸을 때 편하고 좋았던 길이었지만 다른 이들이 걸어보니 "너무 힘들다"는 반응이 나와 코스가 취소된 적도 있었다.
길만 찾는다고 코스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팔공산에는 주인 있는 길이 많았다. 팔공산은 행정지도상 대구와 경북으로 나뉘는데, 대구의 경우 사유지 비율이 90%를 넘어선다. 그가 팔공산 올레길을 '사람 사업'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올레길 2코스는 평산 신씨 문중의 땅이다. 많은 이가 찾는 길이 되면 유적지나 문화재가 훼손될까 봐 염려하는 문중 측을 설득하는 것도 오 씨의 몫이었다. 또 동화사 입구를 올레길 7코스에 넣기 위해 종무소 관계자들과 스님들을 수차례 만났다. 오 씨는 "좋은 길을 찾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더라. 많은 이들이 걷을 수 있도록 지주들에게 동의를 얻고, 조율하는 작업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고 했다.
◆산에서 기타 치는 사나이
경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공과 어울리지 않는 전직을 가졌었다. 예전 직업은 바로 프로 기타리스트. 대학 시절부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타 연주를 했다는 오 씨는 '모토'라는 이름으로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대구에서 활동했다. 이후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겨 5년간 활동했지만 정식 음반 한 장 발매하지 못하고 고향인 대구로 다시 내려왔다.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도 하나 알려줬다. "모토라는 밴드 뜻은 어머니의 땅, 한자로 모토(母土)라고 지은 거였어요. 어떤 무대에 공연을 갔는데 주최 측에서 우리 밴드 이름을 '모트'라고 적은 거예요. 록 음악을 하는 밴드니까 과격한 느낌일 거라 생각하고 맘대로 이름을 추측한 거죠. 하하." 청춘을 바쳤던 밴드 생활을 접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였지만 그는 "내가 생각해도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며 웃음으로 넘겼다.
록 그룹사운드에서 기타 치던 남자가 시민단체에서 올레길을 만든다니.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음악인과 팔공산을 엮어준 것도 기타였다. 대구 녹소연 전직 사무국장이었던 안재홍 씨와 그는 경북대 사회학과 동기다. 5년 전 대구 녹소연 행사에 초청받아 기타 연주를 하러 갔던 그는 안 씨로부터 "팔공산 문화를 바꿔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팔공산은 오리고기와 모텔로만 유명한 게 사실이잖아요. 은퇴 예술가들이 산 곳곳에 터를 잡고 살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는데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팔공산 문화를 바꾸자는 제안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 무렵 팔공산녹색연합문화센터가 생겨 저도 이곳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생긴 센터에서 그는 지역 주민들에게 기타를 가르쳤다. 센터가 있는 불로동에 '기타 교실'을 열자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서른 명 가까운 학생들이 기타를 배우러 센터를 찾아 언제나 사람으로 붐볐다. 기타 수업을 받는 사람은 중'고등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에는 쉰 살을 넘긴 어른들도 있었다. 동네 기타 교실의 인기는 전문 밴드 출신 기타 선생님의 실력 덕분이 아니라 문화생활에 목마른 주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였다. 오 씨는 "1년 반 정도 기타를 가르치면서 나도 참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안 씨가 제주도로 떠나면서 오 씨가 대구 녹소연 사무국장 자리를 맡게 됐고, 팔공산 기타 수업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가 가는 곳에는 기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무실 직원 A씨가 노래를 곧잘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뒤 그를 꾀어(?) '올레밴드'를 만들었다. 멤버는 고작 두 명이었지만 가끔씩 팔공산에 올라 그는 기타를 치고, A씨는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판이 제법 커져 '대구올레음악단'이 탄생했다. 보컬 2명과 기타리스트 2명, 아프리카식 북인 젬베 연주자 1명까지 합류해 그럴싸한 밴드가 됐다. 오 씨는 "예전에 밥벌이로 음악을 할 때는 '돈을 받고 공연하면 돈값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연주할 때 여유가 생겼다. 우리 밴드가 '대구올레송'이라는 주제가까지 제작했다"며 껄껄 웃었다.
◆"시민이 가꾸는 길이 됐으면"
그는 다른 지역의 길도 여러 번 걸었다. 제주 올레길은 물론 지리산 둘레길, 강릉 바우길, 북한산 둘레길, 서울 둘레길 등 비슷비슷하지만 저마다 특색을 지닌 길들을 걸으며 팔공산 올레길의 미래를 생각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에는 일본 규슈 올레길을 찾아 걸었다. 이 길은 제주 올레 명칭을 빌리는 대가로 제주에 매년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는 곳이다. 오 씨는 "규슈 올레길은 뒤늦게 생긴 길이지만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온천이 있어 걷기로 피곤해진 몸을 풀기에 그만이었어요. 온천이라는 지역 특색을 잘 활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길을 만들며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올레길 6코스 '단산지 가는 길'은 불로동 고분군이 출발점이다. 하지만 2011년 문화재청의 지원 아래 동구청에서 '불로동 고분군 탐방로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어이없는 공사를 했다. 당시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 아래 원래 흙길이었던 탐방로를 없애고, 그 위에 울퉁불퉁한 박석을 깔았다. 그것도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기에 시민 제보로 알게 된 것. 이 길은 제주 올레 창시자 서명숙 이사장이 "삼국시대로 거슬러가는 느낌"이라며 극찬한 곳이었다. 오 씨는 "탐방로 안정성을 높인다며 깐 박석이었지만 길을 걸을 때 다리가 더 아프고, 겨울에 물이 얼면 미끄러워 위험해 피하는 길이 됐다. 올레길은 코스 개발보다 관리 감독이 더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라고 아쉬워했다.
부족한 시민 의식도 문제다. 올레길 4코스 '평광동 왕건길'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사과나무를 볼 수 있는 코스였지만 최근 코스에서 빠졌다. '사과 서리 사건' 때문이다. 탐스럽게 열린 사과를 몰래 따먹다가 과수원 주인한테 걸리는 사건이 잦아지자 사과밭 주인이 코스를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해와서다. 또 복숭아가 많이 열리는 용진마을에서도 '서리 사건'이 종종 발생해 녹소연에 수차례 항의 전화가 왔다. "잘 익은 사과와 복숭아를 보면 서리 유혹을 받을 정도로 탐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먹고 싶으면 주인한테 말하고 사서 먹는 것이 맞는데 이런 단순한 에티켓을 지키지 않아 서로 마음이 상하는 거죠."
길을 걷다 보니 팔공산 봉우리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랐다. 걸었던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오 씨가 길에 새긴 소망이 뭔지 궁금했다. 그는 팔공산 올레길이 "시민이 가꾸고 만드는 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민단체가 먼저 나서 이 길을 만들었듯이 앞으로 시민들이 애정을 품고 올레길을 관리했으면 하는 것.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외국의 길들은 이정표가 망가지면 길을 걷는 시민들이 투박하게 그려 고칠 정도로 '자발적 관리'가 이루어진다고 오 씨는 설명했다. "이정표는 시간이 되면 녹슬고 낡습니다. 올레길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실무자들도 언젠가는 바뀌겠지요. 변하지 않는 것은 길을 걷는 시민들입니다. 시민들이 이 길을 더 알고, 사랑해야 팔공산 올레길도 오래오래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알고 보면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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