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청소년수련관, 지자체 지원 한 푼도 없어

입력 2013-09-09 10:41:35

빈곤한 청소년 수련시설

대구지역 한 청소년 수련시설에 문화
대구지역 한 청소년 수련시설에 문화'체육 강좌 회원 모집을 위한 홍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의 A청소년 수련시설은 주말만 되면 복도와 로비에 춤'마술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로 북적인다. A수련시설은 청소년 수련활동의 하나로 동아리 활동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 마련된 강의실은 모두 12개. 하지만 이들이 실내가 아닌 바깥에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동아리 활동을 위한 방이 고작 2개에 불과하기 때문. 나머지 10개는 수련시설 수익사업의 하나인 문화'체육 강좌 강의실로 사용된다. 유료 문화'체육 강좌의 평균 강습료는 강좌당 7만~8만원. 지역 청소년의 활동 진흥을 위해 수십억원의 세금을 들여 설립한 청소년 수련시설이 돈벌이 시설로 전락하고 있다.

◆생계수단이 된 문화강좌

청소년 수련시설 관계자들은 수련시설의 '문화센터화'는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운영비 지원 탓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대구지역 13개 청소년 수련시설은 청소년활동진흥법에 따라 각 지자체의 재량에 맞게 설치 및 운영 경비를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 없이 지자체 사정에 따라 운영비 지원이 결정되는 까닭에 수련시설 간 빈부격차가 크다. 지자체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중구는 모든 운영비를 지원받는 반면 서구 청소년수련관은 지자체 지원비가 한 푼도 없다. 청소년 수련시설이 없는 남구의 청소년은 인근 달서구 청소년 수련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달서구도 녹록지만은 않다. 달서구의 경우 지난해 지자체 공공요금 지원금으로 나온 1억2천만원과 정부에서 프로그램 지원금 등으로 나온 2억6천여만원이 운영 보조금의 전부다. 이는 지난해 전체 지출액인 18억4천500만원의 20.6%에 불과하다. 남은 인건비나 시설 관리운영비 등은 수련시설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성인'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체육 강좌가 수련시설을 유지'운영하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이는 시설 운영비 전액이 지원되는 청소년 쉼터와 상담복지센터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여성가족부 청소년활동지원과 관계자는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쉼터, 상담센터는 복지시설로 분류돼 전액 지원되지만 수련시설은 성인을 포함한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돼 지원되는 금액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혜택받지 못하는 청소년

청소년 수련시설 빈곤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청소년에게 돌아가고 있다.

낮은 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청소년 수련시설을 떠나는 청소년지도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청소년 프로그램 질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청소년지도사들에 따르면 3급 청소년지도사의 평균 월급은 150만원 정도다. 이는 올해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154만6천399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청소년지도사의 평균 근속 연수는 최대 3년으로, 대부분의 지도사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이직을 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년 전 대구지역 수련관에서 청소년지도사로 활동했던 오모(36'경산) 씨는 지금 물류센터 운송업 일을 하고 있다. 오 씨는 "결혼하기 전에는 열정 하나만으로 겨우 버텼지만 결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청소년 활동 현장을 떠나야 했다. 오죽하면 청소년지도사 둘이 만나 결혼하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된다는 말이 나오겠느냐"고 했다.

청소년 수련시설의 가난은 프로그램 강습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 직영이 아닌 위탁으로 운영되는 청소년 수련시설은 문화'체육 강좌 강습료가 비싼 경우 10만원을 넘어 대형마트 문화센터와 비슷하거나 비싼 경우도 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동요교실을 비교해 보면, 대구지역 한 청소년 수련시설 강습료는 7만원이다. 인근 대형마트 문화센터가 4만원이고, 운영금 전액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 중구 청소년 문화의 집 강습료가 무료임을 생각하면 이곳 수련시설을 통해 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다.

◆청소년 육성 예산 높여야

지난해 말 대구지역 청소년은 모두 53만3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21.3%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청소년 관련 예산은 77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13%를 차지하고 있다. 청소년 한 명에게 고작 1만4천원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꼴이다. 지난해 대구에서 11명의 청소년이 투신하면서 '폴짝 시티'라는 오명(汚名)으로 불리고 있는 대구의 현실도 여기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청소년 육성을 위한 투자가 청소년 자살을 막는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원은 "청소년 정책의 목적은 학습 능력과 함께 자신의 재능을 타인과 나누는 바른 인성을 겸비하는 건강한 청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며 "청소년 수련시설과 같은 청소년 육성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처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청소년 문제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지 말자는 것. 정부가 청소년활동진흥법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청소년 수련시설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악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청소년 수련시설의 현실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성용규 대구시 청소년수련원 원장은 "시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구 청소년 수련시설도 최근 태안 앞바다에서 해병대 캠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와 같은 안전사고의 불씨가 잠재되어 있는 셈이다"며 "대구시는 청소년 수련시설에 현실성 있는 예산과 운영비 지원 기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건강한 청소년 육성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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