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회진을 한다. 밤새 열은 없었는지 환자 이마에 손을 얹어보기도 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하기도 하고, 수술부위가 있으면 상처를 체크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으로 빠지지 않고 꼭 농담을 던진다. 며칠간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더니 얼굴이 훤해졌다거나,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는 등 대개 여성이 좋아할 만한 칭찬의 농담이다.
여성병원의 경우 생명을 위협할 만한 중환자가 별로 없기에 가능한 농담이다. 이런 농담을 하는 데는 다른 목적도 있다.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밝은 햇빛이 들어와 환한데도 천장의 등이란 등은 다 켜놓고, 보지도 듣지도 않으면서 TV를 켜놓고 있어서 '전깃불 끕시다, TV 끕시다'라고 말할 때 기분 언짢아하지 말라고 먼저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싱글싱글 웃으며 큰소리로 말하면 이미 예쁘다고 칭찬해 놓은 덕분에 대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고 그래, 아끼는 건 원장님뿐이다. 전기료만도 가당찮을 건데"하며 공감해준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 아낄 줄 모른다고 한바탕 쓴소리도 늘어놓는다. 겨울철에는 난방으로 덥다고 문을 열어 놓고 있고, 여름철에는 냉방으로 차다고 문을 열어 놓는다.
병원에 일하는 젊은 직원들도 예외는 없다. 소독 솜에 소독약을 적셔 오면서 한 개의 소독 솜에 소독약을 적당히 적셔오면 되는데 여러 개에다 듬뿍 적셔온다. 그리고 한 개만 쓰고 버린다. 수술실에서는 일회용품을 많이 쓴다. 상처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실도 전에는 아주 작은 자투리까지 사용했으나 요즘엔 대충 쓰고 버린다.
수술기구도 일회용이 많아졌다. 일회용 제품이 매우 잘 만들어져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다. 실제로 소독해서 다시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보건당국에서는 이런 고가의 수입품을 재활용하지 못하게 한다. 십수 년간 수련을 쌓은 전문의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수술비보다 일회용 기구값이 몇 배나 하는 게 보통이다. 의사로서는 맥빠지는 일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기구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재활용을 하면 환자 부담도 줄이고 부족한 보험재정도 절약할 수 있다. 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국적 거대기업인 외국제조사들의 당국에 대한 로비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믿고 싶지 않다.
절약이 몸에 밴 우리 세대에게는 요즘 풍요가 혼란스럽다. 오늘 아침 열무김치에 밥을 비비려고 참기름을 숟가락에 부으며 확 나와버릴까 봐 조금씩 벌벌 떨며(?) 부었다. 아내가 '아이고, 이젠 참기름 한 숟갈 정도는 먹어도 될 처지니 그냥 다 넣고 비벼 드이소'한다. 그런데 한 숟갈의 참기름 비빔밥 맛이 반 숟가락보다 못함은 어인 일인지.박경동 효성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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