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일장] 수필-복숭아

입력 2013-09-05 14:08:23

박재우(대구 달서구 상인동)

이글거리는 강렬한 햇빛과 습한 공기가 폐부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 한여름의 절정이 되면 도시인들은 저마다 바다며 계곡, 시원한 곳을 찾아 더위를 식히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수십 년 넘게 복숭아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부모님은 그런 한여름이 제일 바쁘다.

아직 어둑한 땅거미가 깔린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경운기 시동 소리로 하루를 누구보다 일찍 시작하지만 복숭아밭에서 몇 시간 동안 줄기차게 땀을 쏟아내야 겨우 경운기 한 대 분량의 복숭아 양을 허락받으셨다. 대도시 공판장으로 단체로 배송을 하는 이유로 그렇게 항상 시간에 쫓겨 밥을 드실 시간조차 없어서 어떤 날은 미숫가루로 대충 허기진 배를 달래면서 복숭아 선별과 포장에 매달려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어른이 된 후로는 첫 수확된 복숭아를 먹을 때면 그것이 다디단 복숭아든, 그렇지 않은 복숭아든 제대로 된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이렇게 수확하기까지 1년 내내 고생하셨을 부모님의 모습이 머릿속을 온통 휘젓고 다녀서 미감에 집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에게 있어 복숭아는 1년 중 제일 무더운 시기에 힘들게 일을 해야 하게 하는 존재이지만 그런 반면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공부시키고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준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일 듯하다.

내가 나이를 먹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니 그동안의 세월이 자연스럽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전부터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복숭아를 보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힘들게 일하셨을 모든 부모님의 수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에게 있어 복숭아는 부모님의 사랑, 노고, 건강, 작은 일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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