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계절이 바뀌면
숲에 사는 것들 모두 몸을 바꾼다
잎을 떨구고 털을 갈고 색깔을 새로 입힌다
새들도 개구리들도 뱀들도 모두 카멜레온이 된다
흙빛으로 가랑잎 색깔로 자신을 감춘다
나도 머리가 희어진다
나이도 천천히 묽어진다
먼지에도 숨을 수 있도록
바람에도 나를 감출 수 있도록
그러나 이것은 위장이다
내가 나를 위장할 뿐이다
나는 언제나 고요 속에 온전히 있다
봄을 기다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고 죽는 건 가죽과 빛깔이다
나는 계절 따라 생멸하지 않는다
내가 계절이다
늙지 마라
어둠도 태어난다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
세상은 변하면서 흘러간다. 가면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또 온다. 하루가 아침과 한낮과 저녁과 밤이 차례로 오고가듯, 한 해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또 가고 온다. 자연은 이 정도 순환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큰 순환 주기를 돌리고 또 더 큰 순환 주기를 돌리고 돌린다. 그렇게 믿고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육십갑자 한 번 도는데 60년이 걸린다. 기본 순환이다. 사계절로 환산하면 한 계절에 15년이다. 밤이 온다고, 겨울이 온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루의 휴식은 아침으로 이어지고 겨울의 휴면은 봄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어둠도 태어나"고 겨울도 태어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삶이 캄캄한 밤이라면, 모든 것이 사라진 것만 같은 겨울이라면 결코 낙담할 필요 없다. 물론 견디기 어렵겠지만, 그 안에 아침 해의 기운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그 안에 봄의 새싹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계절 따라 생멸하지 않는다." 당신이 "계절이다". 때가 되면, 겨울은 가지 말라고 해도 가고 봄도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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