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신경모세포종 재발 김수진 양

입력 2013-09-04 07:45:05

또다시 항암·방사선 치료…12년 전 악몽 되풀이

김수진(가명
김수진(가명'16'여) 양이 병실에서 마스크를 쓴 채 잠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12년 전 신경모세포종으로 고생한 수진 양을 보는 어머니 이해숙(45) 씨는 그저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날 뿐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김수진(가명'16'여) 양은 2일 또다시 대학병원 병실에 입원했다. 지난달 31일 무균실을 나온 지 3일 만이다. 신경모세포종을 앓는 수진 양은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부족한 혈소판을 수혈하고 면역억제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 또 혈액과 면역력에 관한 각종 수치들을 검사받아야 한다. 다음 날에 퇴원할 수 있다지만 신경모세포종이 완치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식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수진 양과 어머니 이해숙(45) 씨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12년 전에도 수진이가 똑같은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12년이 지나 그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보내야 된다는 생각에 버겁고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그래도 이겨내 보렵니다."

◆12년 동안 잊고 지낸 병

수진 양이 앓고 있는 신경모세포종은 신경 세포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의 하나로 대부분 영아나 10세 미만의 소아에게 발병한다. 수진 양이 처음 신경모세포종을 앓기 시작한 때는 4살 때인 2001년이었다. 갑자기 다리와 배가 아프다는 수진 양을 데리고 병원에 갔던 어머니 이 씨는 '신경모세포종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때부터 2년 반 동안 수진 양의 힘겨운 치료가 시작됐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가 계속됐고 2002년 조혈모세포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입원해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진 양에게도 어머니 이 씨에게도 고통스러운 2년 반이었다.

2년 반이 지나고 나서 수진 양에게 신경모세포종 완치 판정이 내려졌고 수진 양도 건강을 되찾았다. 다만 오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 성장호르몬이 잘 분배되지 않아 또래보다 성장이 느리다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동안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수진이가 10년 넘는 시간 동안 건강하게 자라줘서 마음을 놓고 있었어요. 감기라도 걸려 열이 심하면 '병이 다시 재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인 적도 있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으로 끝이 났었죠. 그렇게 병이 완치됐다고 믿고 12년 동안 그 병을 잊고 지냈어요."

하지만 완치된 지 10년이 지난 올해 4월, 수진 양은 또다시 그 병과 맞서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됐다.

◆"하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지난 4월 수진 양은 이 씨에게 "다리가 너무 아파서 등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 때까지만 해도 수진 양이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수진 양의 투정을 다 받아줄 수 없다고 생각한 이 씨는 "일단 등교를 하고 못 견디겠거든 조퇴해서 와라. 그때 같이 병원에 가자"고 수진 양을 달랜 뒤 학교에 보냈다. 수진 양을 학교에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진 양이 너무 다리가 아파 학교 건물 4층에 있는 교실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급히 학교로 간 이 씨는 수진 양을 데리고 예전에 치료를 받던 대학병원으로 갔다. 진단 결과 신경모세포종이 재발해 골수까지 전이된 상황이었다.

"12년 전 수진이를 괴롭히던 병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겁니다. 오히려 더 악화된 상태로 말이죠. 강하게 키우려고 수진이가 아프다고 할 때 받아주지 않은 게 그렇게 후회되고 수진이에게 미안할 수가 없더군요. 가슴이 아픈 정도를 넘어 하늘이 원망스러웠어요. '하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원망도 많이 했지요."

이 씨는 이때부터 12년 전과 똑같이 수진 양을 간호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수진 양 또한 4월부터 7월까지 이어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그리고 무균실 입원과 8월에 받은 제대혈 이식 수술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치료과정을 힘겹게 이겨냈다. 수진 양이 치료과정을 이겨내는 데에는 신앙의 힘도 컸다. 수진 양은 병을 앓기 전부터 교회에 다녔고, 무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항암치료 과정 중에도 병원의 허락을 맡아 교회 주일예배를 나갔다. 수진 양은 "교회를 다녀오면 마음이 편해져서 치료받을 때 잘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치료비는 어디서 구해야 하나?

수진 양이 무균실을 퇴원할 때까지 들어간 병원비는 무균실 입원비와 제대혈 이식 수술 비용 등 3천800만원가량이다. 이 씨는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 씨 부부는 현재 신용불량자 상태다. 수진 양이 2001년에 처음으로 아플 때 치료비 해결을 위해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다 갚지 못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 씨 부부는 그때 진 빚 5천여만원 중 대부분을 수진 양이 아프지 않던 12년 동안 갚아나가고 있었다. 특히 이 씨는 새벽 우유배달과 요구르트 배달, 식당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남편도 B형 간염 보균자라서 힘든 일을 거의 못해요. 지금 한 건물의 관리인으로 일하는데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이 빚 갚는 데 들어가고 있어요. 억척스럽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시련이 오니 감당이 힘듭니다."

또 다른 걱정은 매주 들어갈 병원비다. 입원한 이 날만 해도 검사 비용으로 들어간 돈이 20만원 가량이다. 남편 월급의 대부분이 빚 갚는 데 쓰이고, 이 씨 또한 현재 수진 양의 병간호로 요구르트 배달 등 하던 일을 그만둔 상태다. 이날은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병원비를 냈지만, 다음 주, 그리고 또 그다음의 검사 때 자칫 병원비를 못 내서 검사를 제대로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 씨는 근심에 잠긴다.

수진 양과 이 씨는 한때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고쳤다. 지난 10년 동안 행복하게 산 만큼 앞으로도 그 힘으로 병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수진이는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랍니다. 때로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고 수진이 아플 때 낙심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수진이가 아픈 걸 잘 이겨낼 거라고 믿어요. 지금도 교회나 학교 친구들이 수진이를 많이 사랑해주니까 그 힘으로 수진이는 툴툴 털고 일어날 겁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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