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여물만 주다가…올해 벼농사로 2만6천원 벌었어요, 부자될 것 같아
르완다에서 '새마을운동'은 빈곤 퇴치를 위한 교과서다. 르완다 정부가 2020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중장기 경제개발계획 중 지역개발 사업과 여러 면에서 흡사하기 때문이다. 매달 한 차례씩 전 국민이 차량 운행을 중단하고 청소를 하는 '우무간다'는 좋은 예다.
르완다의 새마을운동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을 충실히 반영하며 현지화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소득 증대와 기반 시설 확충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문화 콘텐츠 개발과 문맹 퇴치, 주방 환경 개선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르완다 국민들은 교육열이 높고 소득을 높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수도 키갈리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인 기호궤마을은 이 같은 특성이 새마을운동 사업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다
기호궤마을 시범농장에서 일하는 카릭스트(28) 씨는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산다. 그의 하루는 어스름한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오전 5시부터 시작된다. 논에서 낱알을 삼키는 새를 쫓기 위해서다. 농사일이 바쁠 때는 오전 3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잦다. 해가 뜨고 이슬이 마르면 텃밭으로 돌아와 작물을 돌보고 새마을청년회 정기 모임에 참석한다. 마을 현안에 대해 토의를 하다 보면 정오다. 집에 돌아와 끼니를 해결한 뒤 오후 2시부터는 문해 수업에 들어간다. 숫자와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그에게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다. 1주일에 세 번 수업을 하는데 아직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이름을 쓰거나 읽지도 못했고, 돈을 세는 법도 몰랐던 그에게는 소중한 기회다.
1994년 내전과 종족 대학살 당시 부모를 잃은 그는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수업을 마치면 오후 늦게 밭으로 돌아가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식사를 하고 아내와 사촌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든다.
카릭스트 씨의 삶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극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매일 오전 밭에 나가 작물을 잠깐 돌보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소에게 물을 먹이고 나면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그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거나 소를 돌보는 것 외에는 빈둥거리기만 했다.
수입도 변했다. 올해 초 벼농사로 그가 얻은 소득은 3만RWF(르완다프랑). 우리 돈으로 2만6천원 정도다. 그가 태어나서 만져본 가장 큰돈이었다. 가족들을 모두 먹여 살리기엔 부족하지만 그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 "수입이 생기니까 은행에서 계좌도 만들 수 있게 됐고 이자나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이젠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릭스트 씨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 건 새마을 시범농장이다. 2011년부터 마을 내 습지에 2.5㏊ 규모의 벼농사가 시작됐고, 올 들어 10㏊로 확장했다. 논 주변에는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소형 보가 생겼고, 관개 수로도 만들고 있다. 농경지와 가까운 곳에는 260㎡ 규모에 건조장과 창고 등도 갖췄다. 새마을봉사단은 매주 3차례씩 주민들을 대상으로 농수로 개선과 밭두렁 만들기 등 농업 기초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문화로 이끌어내는 인식의 변화
오후 2시가 되자 주민들이 전통춤 수업을 듣기 위해 야외 회의장에 모여들었다. 전통북인 인고마를 둥둥 치자 새마을 티셔츠와 전통의상인 이미샤나나를 입은 남녀가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다. 한 주민이 북소리에 맞춰 선창을 하자 주민들이 두 팔을 흔들며 후창으로 화답한다. "아마호호~아마호호" 한국과 르완다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다.
갑자기 북소리가 빨라지고 춤사위도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환영의 인사다. "그동안 어디 있었는가. 나는 여기에 있다"는 내용. 회의장을 돌며 승리를 축하하는 춤이 이어지고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가무는 1시간 30분간 이어졌다.
전통춤은 집안에만 칩거하는 여성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1994년 벌어진 집단학살은 여성들을 집 안에 웅크리게 만들었다. 마을 안에는 '매 맞는 아내'가 다반사일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 새마을봉사단은 친숙한 생활문화를 통해 여성들을 집 밖으로 불러냈다. 춤만 함께 추는 것이 아니라 보건위생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도 배운다.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여성들의 변화가 감지됐다. 성격이 활발해졌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서로 모여 외로움을 달래다 보니 결속력도 높아졌다. 여성운동을 담당하는 솔란시(30) 씨는 "여성들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며 "여성들의 권리 신장과 위생 개선, 문맹 퇴치에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문해 수업 시간에 숫자 쓰기 시험을 쳤다. 학생들은 1부터 9까지 아라비아숫자를 꼭꼭 눌러썼다. 얼굴에는 고민스러운 표정도 역력했다. 만점을 받은 학생이 60% 정도. 교사는 쪽지 시험지에 틀린 부분을 꼼꼼히 정리해 돌려줬다. 교사가 숫자가 적힌 퍼즐을 들어 보여주니 학생들이 일제히 숫자를 합창했다. 수업 내용은 유치원 수준이지만 수강생 23명 모두 20대 이상이다.
이들은 자국어인 킨야르완다어와 숫자, 달력 보는 법, 시계 보는 법 등을 배운다. 출석률은 90% 이상이다. 전문교사가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해 호응이 높고 출석률이 좋다. 하키지마타 저스틴(33) 씨는 "예전에는 버스 표지판도 못 읽고 거스름돈도 계산하지 못했지만 이젠 이름도 쓰고 간단한 계산도 한다"고 웃었다.
새마을봉사단은 마을 전 가구에 개량 화덕도 설치했다. 르완다에서는 도둑 등을 우려해 집에 창문을 잘 내지 않는다. 굴뚝이 없고 집 안에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안질환이나 폐질환에 시달린다. 새 화덕은 흙으로 아궁이를 만들고 연통으로 공기를 바깥으로 배출하는 방식이다. 제작 비용이 저렴하고 주민들이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구조가 간단하다. 새마을봉사단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직접 주방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개량 화덕을 현지화했다. 툭하면 갈라지는 화덕을 소똥과 건초, 진흙을 섞어 단단하게 만든 것도, 불구멍의 위치를 바꿔 화력을 높인 것도 주민들의 아이디어였다. 연기는 한국의 전통 아궁이의 형태에서 착안해 완벽하게 해결했다. 새마을운동이 '잘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열망에 불을 지핀 셈이다. 르완다 키갈리에서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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