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탐험에서 돌아온 닐 암스트롱이 1969년7월 24일 귀환 후 첫마디는 "The Sky is Black"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하늘천따지검을현누루황'이라고 노래 부르면서도 하늘 색깔을 물으면 푸른색이라 한다. 6세기 양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천자문의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는 하늘은 검다고 가르친다. 하늘의 색에 관한 한 첨단의 서양 과학이 동양에 1천400년 뒤진 셈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푸른 하늘 색은 대기권 수증기 입자의 산란현상으로 나타난 잘못된 색깔이라 한다. 그럼 물의 색은 무엇일까.
청산도란 섬이 있다. 영화 '서편제' 중의 명장면 당집이 있는 황톳길에 일몰 무렵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 렌즈만 열면 쉽게 한 폭의 그림을 건져 올린다. 정박한 배에서 작은 달들이 조롱박처럼 열리고, 어부의 집에서도 희미한 30촉 전구들이 고개를 내민다. 가로등이 켜지면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아니 슬로아일랜드의 운치가 정점이 된다. 청산도에선 일출과 일몰은 물론 어두운 저녁 시간에도 바다에서 풍경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야경 사진에 주로 쓰는 벌브셔터를 오래 열어두면 필름은 밝은 부분을 더 밝게, 어두운 부분은 더 어둡게 표현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사진학 전문용어로 상반측불괴현상(相反側彿怪現像)이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사진을 인화하기 전에는 색깔을 전혀 알 수 없는 신비한 사진이 만들어진다. 물의 색은 언제나 달랐다.
서해의 갯벌과 동해의 에메랄드빛이 공존하고, 해의 폐경과 달의 초경이 몸 섞는 5분간의 빛 반죽이 발효하는 시간 동안 카메라 렌즈를 바다에 드리우면 숨어 있던 진한 푸른 바닷물 빛과 전등 몇 알이 쨍한 '스타 현상'으로 화면에 그물처럼 걸린다. 뜨거운 컵라면 하나 감아올릴 시간만큼 렌즈는 보이지 않는 빛을 흡입하고, 무료한 딸아이가 연달아 묻는다. "아빠! 이 사진을 뽑으면 까만 바다는 무슨 색이 되는 거야?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나는 어떤 색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진학 용어 '상반측불괴현상'을 설명하기 힘들어 '도리스 데이'의 노래 '케 세라 세라'(Whatever Will Be Will Be: 무엇이 되든지 간에, 될 대로 되겠지)를 불러주었다.
상반측불괴현상을 이용해 촬영하는 사진 색깔과 형상처럼 인간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야 멋진 구도를 설정하고 카메라에 들어올 빛의 양을 예측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도 후일의 어느 시점에 몇 가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젊은 시절 열정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남해의 바다 빛깔처럼 동서가 화합하고, 좌우가 조금씩 양보하면 한국의 미래는 아름다운 청산도 야경사진이 될 것이다.
서영환 시인'음악평론가 seodam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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