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출생지…독립투사 고초당한 대구교도소…

입력 2013-08-22 11:20:40

대구 중구 삼덕동의 재발견… 골목골목엔 이야기가 숨어 있네

대구 중구 삼덕동이 재발견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출생지로 주목을 받았던 삼덕동이 대구의 역사'문화 자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로 조명을 받으면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것. 대구 중구청은 삼덕동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발굴해 기존 삼덕동 일대를 돌던 골목투어 4코스를 보강할 계획이다. 동산 선교사주택과 계산성당 등이 모여 있어 관광객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던 골목투어 2코스에 이어 삼덕동이 또 하나의 대구 랜드마크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을 만든 곳, 삼덕동

대구 중구 삼덕동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첫 기억'을 담고 있다. 현재 쇼핑몰 몰디브 코리아가 위치한 옛 동인호텔 자리는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신혼집을 꾸민 곳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첫 울음을 터트린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와 중구 계산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곳에 세 칸짜리 방을 얻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고 전해진다. 2년 후 박근혜 대통령을 낳고 대구를 떠난 뒤 이곳에서 두 대통령의 흔적은 사라지고 현재 '박근혜 대통령 생가터'임을 표시하는 조형물만 남아있다. 하지만 이곳은 주민들은 물론 대구 시민들에게 두 대통령과 인연을 잇게 하는 자랑거리 중 하나다.

또 삼덕동은 대구 마을공동체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지난 1998년 대구YMCA 김경민 사무총장이 삼덕동 개인 주택 담장을 허무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 학교, 병원, 도서관 등도 잇달아 담장을 허물었다. 허물어진 담장 자리는 녹지'휴식 공간으로 꾸몄고 남아있는 담장에는 병뚜껑'타일 등을 이용해 벽화를 그렸다. 매년 5월이 되면 마을은 축제의 장이 된다. 인형극을 중심으로 마임과 패션쇼, 거리 퍼레이드 등 어린이를 위한 '머머리섬 축제'를 여는 등 마을 전체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축제를 지원하고 있는 대구 YMCA에 따르면 '머머리섬'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강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을 뜻한다. 재개발 광풍에 휩쓸려 마을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 사라지지 말고 오래도록 옛 모습을 간직한 강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삼덕동에는 머머리섬과 같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이 일부 남아 있다. 삼덕동 일대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행정기관들의 숙소였던 '관사'와 '사택'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삼덕동 221번지에 있는 '빛살미술관'이 그중 하나다. 빛살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삼덕초교 교장 관사로 사용됐던 적산가옥으로 일제강점기 관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이 집은 2000년 대구YMCA가 임대해 미술관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임대 기간이 끝나면서 다시 매각될 위기에 놓였다. 대구시와 중구청은 현재 미술관을 문화재청에 문화재로 등록하려는 등 매각을 막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삼덕소방서 건너 관음사(觀音寺)도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다. 대구의 근대사를 풀어쓴 '대구신택리지'에 따르면 관음사는 191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일제강점기 주변에 있었던 형무소, 법원, 자혜의원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들과 직원들이 다니던 절이었다. 관음사 뒤편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구지검장과 대구법원장 관사가 있었는데 수년 전 빌라가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김경민 대구 YMCA 사무총장은 "대구 중구 삼덕동은 삭막해져 가는 도심 풍경 속에서 협력적이고 공동체적인 옛 모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네 중 하나다"며 "하지만 요즘은 도심지 난개발과 원룸 등의 진입으로 동네의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이 앞장서서 옛것을 보존하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애환이 담긴 옛 대구교도소 터

대구 중구 삼덕동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됐던 대구교도소의 옛 터전이다. 1908년 '대구감옥'으로 경상감영 내에 처음 설립된 대구교도소는 1910년 중구 삼덕동으로 터를 옮겼다. 이후 1971년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60여 년간 삼덕동 대구교도소에는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돼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대표적 독립운동가가 항일시인 이육사(李陸史)다. 대구교도소는 그가 지금의 필명 '육사'를 얻게 된 곳이다. 그는 1927년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미수 사건을 계기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때 육사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다. 1929년 출옥 후 그는 만주와 중국을 전전하며 독립투쟁을 벌이다 1933년 귀국하여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힘든 투옥 생활을 보내야 했던 대구형무소가 그의 저항 정신의 불길을 피어오르게 한 모태였던 셈이다.

이 밖에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을 주도한 장진홍 의사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다 끝내 옥중에서 자결했다.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던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도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돼 생을 마감했다. 또 조선국권회복단의 기밀부장이었던 홍주일 의사 등 삼덕동 대구교도소 옛 터는 일제에 저항하다 수감되어야 했던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형무소 터에 살면 좋은 기운을 받아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속설이 돌아 예부터 삼덕동은 '부자동네'로 불렸다고 한다. 현재 대구교도소 옛 터에 위치한 삼덕교회도 독립 운동가들의 애환이 담긴 대구교도소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올 연말부터 시작되는 교회 신축 공사에 대구교도소를 상징하는 조형물 설치 혹은 공원 조성을 고려하고 있다.

김태범 삼덕교회 담임 목사는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대구교도소가 있던 삼덕동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 중 하나다"며 "현재 삼덕동 옛 대구교도소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후 관련 조형물이나 코스를 교회 내부에 설치해 누구나 보고 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고 했다.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독립 운동가들의 흔적인 담긴 옛 대구교도소 터는 대구시가 간직해야 할 문화자산 중의 하나다"며 "이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주요 관사가 모여 있던 삼덕동에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 이야기들을 발굴해 골목투어 코스를 촘촘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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