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부권 신공항을 둘러싼 삼각파도

입력 2013-08-21 10:41:24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 정치인과 20일 전쯤 대구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대구경북 출신이지만 그는 수도권 규제를 풀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영남 지역민들의 간절한 염원인 남부권 신공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는 "수요가 없는 지방에 신공항이 필요하냐"고 했다. 그는 대구경북민들이 남부권 신공항의 밀양 유치를 염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왜 대구경북 사람이 K2 군사공항을 확장해 국제공항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남부권 신공항 입지로 경남 밀양을 밀고 있느냐"며 되묻기까지 했다.

지방의 현안과 민심에 대한 이 정치인의 이해도를 본 난에서 굳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방에 대한 정치인들 특히 수도권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죽했으면 MB정부 때 청와대의 한 참모는 신공항과 관련해 전국 시장'도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밀양이 경북에 있는 줄 알았다는 식의 몰이해를 드러냈을까. 수도권론자들은 남부권 신공항의 당위성을 외면했고 수도권 언론들은 딴죽마저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부권 신공항에 대한 수요 조사가 첫 단추를 끼우기 직전인 상황까지 왔다. 분위기는 전과 다른 듯하다. 지난 5월 말 대구에 온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털어놨다. "신공항을 꼭 추진할 것이다. 계산성당에 들러서 하느님께 기도했다. 수요 조사 잘하게 해달라고…."

그러나 대구경북의 입장에서 볼 때 신공항 밀양 유치를 가로막는 삼각파도는 여전히 험하고 드세다. 그중 하나는 앞서도 거론한 수도권론자들의 반대론이다. 이들은 신공항 후보지 선정을 둘러싸고 유치전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틈새를 파고든다. 지역 갈등을 핑계 삼아 남부권 신공항을 무산시키려는 속내도 숨기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파도는 가덕도에만 올인하는 부산의 태도이다. 대구경북이 공정한 입지 평가만 이뤄진다면 가덕도도 수용할 수 있다는 대승적 자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부산은 가덕도 아니면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너무 일찌감치 밀양을 미는 바람에 대구경북으로서는 더 이상 쓸 카드를 잃었다는 만시지탄도 있다. 처음부터 경북 영천 금호에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면 부산과의 협상에서 '밀양 양보 카드'를 쓸 수 있었다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김범일 대구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밀양과 가덕도는 국토교통부에서 고려했던 전국의 신공항 후보지 중 하나였으며 영천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대구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계에서 영천 금호에 신공항이 들어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구경북이 영천 카드를 내세우지 않은 것은 전략상의 실책이었다.

신공항 밀양 유치에서 박근혜정부 출범이 호기로 인식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출생지이자 정치적 고향이기에 대구경북은 오히려 남부권 신공항에 관해서 역차별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의 셈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남부권 신공항 밀양 유치를 가로막는 세 번째 파도이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 퇴로 없는 그의 행보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목소리를 높이는 부산과 달리 판이 깨질 것을 우려해 대구경북은 일단 조용한 전략을 펴고 있다. 이것이 유효한지 알 수 없으나 일단 신공항을 둘러싼 역량과 목소리 결집에서 대구경북 정치권은 부산에 비해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2011년 3월 말 MB정부가 동남권(남부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를 해 시도민이 충격에 빠진 날 김범일 대구시장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공항 유치를 위한 지역민들의 염원과 열기를 모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시킵시다!"

일회성 이벤트 및 유치 효과 논란 속에서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시민들과 관계자들이 혼연일체가 된 덕분에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이후 2년이 지났다.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는 '흘러간 이벤트'가 됐지만 남부권 신공항은 미완성 숙원 사업으로 남아있다. 김범일 시장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 개최에 모였던 지역민들의 염원과 열기를 모아 밀양 신공항 유치를 반드시 성공시키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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