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열대야…곳곳서 한여름밤의 이벤트
벌써 한 달째. 무더위의 횡포가 그칠 줄 모른다. 입추(7일)가 지났고 말복(12일)이 지났건만 끝날 줄을 모른다. 낮과 밤이 다르지 않다. 낮 동안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제밤도 어젯밤도 뒤척였다. 불쾌지수까지 높다.
우리나라가 아열대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열대야는 감내해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짜증 낼 게 아니라 즐기는 쪽으로….
다행히 낮보다 아름다운 밤도 있다.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줄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도 기다린다. 잘 골라 '밤마실'에 나선다면 열대야가 아닌 '야호'(夜好)를 즐길 수 있다.
◆올빼미로 변신
폭염은 잠 못 이루는 올빼미족들을 집 문밖으로 몰아내고 있다. 동네 편의점부터 포장마차, 호프집, 커피전문점, 영화관, 공원, 강변 일대까지 더위를 식혀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문전성시다.
13일 찾은 신천둔치. '밤마실' 나온 인파로 북적였다. 이곳저곳에 자리를 깔고 가족,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 정답게 나누는 이야기 소리. 가져온 수박을 먹고 '치~익' 캔맥주 따는 소리에 무더위까지 씻겨 내려간다. 이날 낮 최고기온이 37℃까지 올랐지만 무더위에 지친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을 찾은 김미연 씨(대구 수성구 범어동)는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다. 밤에도 더워서 며칠째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에어컨을 켜다가도 '블랙아웃'(대정전) 걱정에 장시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여름은 신천변에서 밤을 보낼 생각이다"고 했다.
이날 밤 북구 동천동 대형마트. 자정이 가까운데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가족과 함께 온 김주연 씨(대구 북구 서변동)는 "더워서 낮에는 돌아다니기 힘든데 저녁에 대형마트에 오면 시원하고 운이 좋으면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직장인들이 조기 출근하고 시민들은 낮시간 외출을 자제하는 등 생활방식도 변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무더위를 피해 출근 시간은 앞당기고 퇴근 시간을 늦추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도로의 평균 운행속도는 빨라졌다"고 했다. 대신 신천둔치나 팔공산 인근에 텐트나 돗자리를 펼치고 강바람을 쐬거나 숲으로 한밤의 피서를 즐기는 풍경이 늘었다.
야간 스포츠도 인기다.
'탕~탕~탕.' 최근 야간 운영을 시작한 대구사격장은 늦은 시간까지 총성이 그치지 않는다. 대구사격장은 이달 25일까지 연장 운영(오후 11시까지)을 한다. 이 기간에는 클레이 사격장을 제외한 전투체험 사격장과 스크린 사격장, 권총 및 공기소총 사격장을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물총 전투체험장도 특별히 마련했다.
'따각~따각.' 대구 앞산에 있는 대덕승마장에는 오후 9시까지 말발굽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은은한 달빛 아래 시원한 밤 공기를 가르며 승마를 즐기고 있다.
앞산과 팔공산 일대에는 야간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앞산공원관리사무소는 늦은 시간에 산을 찾는 등산객들을 위해 일부 코스를 대상으로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가로등을 밝히고 있다.
◆밤이 낮보다 아름답다
'천년 고도' 경주는 밤이 낮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12일 오후 찾은 경주. 땅거미가 내릴 무렵 도시 이곳저곳에서 화려했던 옛 서라벌의 영화를 재현하듯 하나 둘 불을 밝힌다. 낮과 다른 밤의 매력에 이끌린 관광객들과 주민들도 어느새 '신라의 달밤'을 좇는다. 마침 첨성대 인근에서 꽃축제가 한창이다. 이 축제에는 경주시민과 관광객 등 어림잡아 수천여 명이 몰려 불야성을 이뤘다. 10분 거리인 안압지에서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은은한 조명 아래 오리들이 연못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상징 건축물인 경주타워의 불빛도 눈길을 당겼다.
매주 금요일 밤이면 공연도 펼쳐진다. 오후 8시 봉황대에서 펼쳐지는 뮤직스퀘어 공연에는 수천 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2010년 G20 재무장관회의가 개최된 이후 바꿔놓은 여름밤의 풍경이다. 경주시는 2003년부터 밤 경관 조명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수십억원을 들여 안압지, 첨성대, 서춘지, 노동고분 등에 밤 조명 시설을 갖췄다. 그러다 G20 재무장관회의 이후 경주의 밤을 찾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임희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요즘 경주의 밤은 옛 서라벌의 영화가 되살아난 것처럼 들썩이고 있다. 왕궁 등 수많은 관광자원에 예술적인 조명시설을 갖춘 덕에 신라 천년의 미소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별빛, 달빛을 쫓는 이들도 늘고 있다. 17일부터 영천 화북면 정각리 별빛마을 및 보현산천문과학관 일대에서 시작되는 영천의 '별빛 나이트 투어'. 밤을 잊은 사람들에게 한여름밤의 추억을 선사한다. 10월 말까지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8월은 셋째'다섯째 토요일)에 열리고 보현산천문과학관의 800㎜ 광학망원경을 이용한 별자리 관측, 나만의 별자리 티셔츠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예천 천문우주센터에서도 야간 별자리 관측이 가능하다.
대구 팔공산에서도 달빛 축제가 열린다. 팔공산 달빛 걷기대회가 25일 오후 6시 30분부터 26일 오전 8시까지 봉무공원과 팔공산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1주년을 기념하고 제93회 대구전국체육대회 성공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봉무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출발하며 오후 5시부터 초청가수 공연 등 식전행사에 이어 오후 7시부터 본격적인 걷기대회가 진행된다. 팔공산 문화유적지를 테마코스로 10㎞, 20㎞ 코스와, 걷기 마니아와 직장인의 극기 훈련용으로 적합한 30㎞, 50㎞ 코스로 운영된다. 봉무공원을 출발해 파군재 삼거리와 구암마을, 팔공문화원, 지묘교, 공항교를 지나 성보학교, 동촌해맞이 다리, 불로교를 거쳐 다시 봉무공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한여름 밤에는 역시 '호러'가 제격. 경남 합천군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합천영상테마파크 호러마을 축제'를 일주일 연장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7월 23일 개장 이래 매일 평균 1천여 명의 입장객이 방문하고 있는 이번 축제는 당초 11일까지 운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장 요청이 잇따라 주최 측은 18일까지 행사를 계속 하기로 했다.
◆열대야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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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중구의 한 대형마트.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판매직원들의 호객행위가 한창이다. 이곳에서는 야간방문 고객 수가 늘어남에 따라 평소 마감 준비를 시작하던 오후 9시 이후에 오히려 근무자와 상품 구색을 늘리고 있다.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만 세일하는 상품들도 나온다. 손님들의 입맛도 즐겁다. 야간고객 수 증가로 오후 8시나 9시쯤 종료하던 무료시식을 오후 10시 이후까지 진행하고 있다. 늦은 시간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오후 시간과 같은 수준으로 시식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인기가 좋은 치킨코너도 기존 오후 7시에 판매를 종료했지만 영업시간을 오후 9시까지 2시간 더 늘렸다. 유통업계에서는 한여름 오후 8시 이후가 황금시간대로 떠올랐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오후 8시 이후부터 방문하는 손님의 수가 예년보다 평균 10% 이상 늘었다"고 했다.
야간할인의 질과 종류도 다양해졌다. 대형마트 등에서는 여름철 야간시간대 야식을 즐기는 올빼미족들을 위해 판매품목을 대폭 늘렸다. 평소에는 오후 9시부터 매장 마감을 위해 순차적으로 떨이판매를 해왔다. 또 일부 매장에서는 기존에 판매하던 마른안주나 견과류 이외에 반건조 오징어와 쥐포 등 건어포 행사 가판대를 별도 설치해 야식족들을 유혹하고 있다. 야간 세일이 '떨이' 개념에서 벗어나 주요한 마케팅 전략이 되고 있는 셈이다.
식사 메뉴가 주요 상품인 패밀리레스토랑도 밤이면 직장인들을 겨냥한 맥주 할인 행사 등을 열고 있다. 대구 중구에 있는 카페 '사과나무'는 다음 달 초 싱글 남녀들을 위한 치맥페스티벌을 열 예정이다. 홈쇼핑업체들도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오전 3시까지 방송을 늘리고 올빼미족들에게 최저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진행해 왔던 야간 할인이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처분하기 위한 할인이었다면 요즘 진행하는 할인의 경우 유통기한에 구애받지 않는 의류, 가공식품, 물놀이용품 같은 계절상품들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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