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에 정치 코드 덧칠…흥행에 독 될까 약 될까
'감기'는 김성수 감독이 10년 만에 연출한 상업영화이다. 한때 김성수는 스타일리스트의 대명사였다. '비트', '태양은 없다'의 감각적인 영상과 빠른 화면 전개, 화면과 적절하게 조우하는 음악, 그 속에 담긴 고뇌하는 청년들의 자화상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감정을 대변하는 스타일리스트로 단숨에 자리매김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그는 '무사'라는 대작을 만들었지만 흥행 실패 이후, 새롭게 연출한 코미디 '영어완전정복'마저 흥행에 실패하면서 오랜 칩거 생활을 해야 했다. 동문수학했지만, 그보다 더 늦게 감독으로 성공한 유하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김성수 감독이 충무로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의외로 김성수가 재기한 영화는 재난영화이다. 이 영화가 의외인 것은 이제까지 김성수는 재난영화를 연출한 적이 없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기'는 기존 재난영화의 계보를 고스란히 잇고 있기 때문이다. 즉, '괴물''해운대''연가시'라는, 성공한 재난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
남한 재난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할리우드 재난영화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기본적인 정서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통상 재난영화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에 직면한 인간들의 고통과 고뇌를 스크린에 재현하면서 관객과 깊은 동일시를 이루어내는데, 대부분의 영화가 재난 때문에 불행에 빠진 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괴물'에서는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자 손녀가 괴물에게 사로잡히고, '해운대'에서는 지독히도 어머니 말을 듣지 않은 아들을 둔 어머니, 자신의 실수 때문에 사랑하는 여성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남성, 별거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딸과 아내가 있는 아버지 등의 감정이 거대한 쓰나미와 함께 복잡하게 섞여 있으며, '연가시'에서는 치료제를 구해야만 아내와 자식을 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픔이 강렬하게 녹아있다.
'감기'에서는 가정이라는 상황을 약간 다르게 설정한다. 의사인 김인해는 남편과 이혼 후 딸 미르를 키우면 살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 원인모를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도시는 폐쇄되고 딸도 감염되었다. 더구나 감염된 이들은 격리하는데 치료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인해는 미르를 격리시킬 수가 없다.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 딸의 가련한 심정이 이제부터 영화 속에 그려진다. '감기'는 이런 스토리 라인에 적당한 로맨스까지 설정해 두었다. 구조대원 강지구는 우연히 사고현장에서 김인해를 도와준 후 가까워지는데, 특히 그녀의 딸 미르와 더 가까워진다. 이제 유사 가족과 러브 라인이라는 영화적 설정은 끝이 난 셈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관객들이 영리한 시대에, 이 정도의 설정만으로 관객들과 대면하면 필패하기 십상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김성수 감독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탑재한 것이 정치적 상황이다. 생각해 보라. '감기'에는 '해운대'처럼 거대한 쓰나미의 스펙터클도 없고, '연가시'처럼 미스터리한 의혹의 설정도 없는데, 무엇으로 관객들에게 결정적 카운트펀치를 날릴 것인가? 이 부분에서 김성수는 '괴물'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미스터리나 스릴러 요소를 모두 버린 채 그야말로 스트레이트하게 앞으로만 나가는 '괴물'에는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많아 흥행이 가속도가 붙을 수 있었다. '감기'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면서 도시를 폐쇄하고 감염자를 격리하며 관리하는 시스템 하에서, 미국과 남한의 대통령이 갈등을 형성하게 했다. 즉, 정치적 상황을 영화 속에 깊숙이 담은 것이다.
물론 이것이 흥행에 독이 될지, 해가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화적 상황을 보면 그리 불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설국열차'의 극단적 계급 투쟁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더 테러 라이브'의 테러를 통해서라도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극단적 태도, 공교롭게도 '숨바꼭질'의 아파트 자본주의에 대한 기묘한 재현 등을 보면, 대부분 흥행하고 있거나 개봉할 영화는 정치적 코드로 해석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그래서 '감기'의 흥행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위의 세 편과 비교하면서 지켜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는 걱정, 또는 기우. 이 영화도 그렇지만, 많은 영화들이 아이들을 볼모로 눈물을 유발하는 상황을 너무 자주 사용한다. 아이가 부모와 헤어져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몹쓸 병에 걸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서도 다시 총격의 위험에 처해진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더 나가면, 최근 영화들은 아이들을 너무 쉽게 유괴하거나, 유괴한 아이들을 대부분 죽여버린다. 이 상황에서 유괴의 디테일을 세부적으로 그리거나, 아이들의 죽음을 자극적으로 이용한다.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우리가 얼마나 가혹하게 아이들을 그리는지 알 수 있다. 할리우드는 절대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그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물과 타살을 자주 그려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공포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또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극장에서 즐기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한국영화는 어린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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