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태(1955~)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사랑이여.
그것을 마라 강 악어처럼 예감한다.
지축 울리는 누떼의 발소리처럼
멀리서 아득하게 올 것이다, 너는.
한바탕 피비린내가 강물에 퍼져가겠지,
밀리고 밀려서, 밀려드는 발길들
아주 가끔은 그 발길에 밟혀죽는 악어도 있다지만
주검을 딛고, 죽음을 건너는 무수한 발굽들 있다.
어쩔 수 없이,
네가 나를 건너가는 방식이다.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 2013)
김학철의 산문에서 읽은 한 대목. 벼랑을 건너는 양떼들 이야기다. 벼랑은 한달음에 건널 수 없는 거리다. 먼저 몸을 날린 양의 등을 뒤따르는 양이 밟고 건너는 방식이다. 허공에 징검다리를 놓은 셈이다. 밟힌 양은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밟은 양은 건너편에 안착한다. 반은 죽고 반은 산다. 풀밭을 찾아가는 양들만의 종족 보존 방식이다.
악어떼 밭을 지나가는 누떼의 생존 방식도 다를 바 없다. 더러는 악어 밥이 되고 더러는 악어 등을 밟고 건너간다. 풀밭이 기다리는 약속의 땅이란 이다지도 모진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악어처럼 엎디어 사랑의 발소릴 두근거리며 듣고 있다. 마침내 사랑이 오고 그렇게 사랑이 가는 시간은 혼돈과 피비린내로 격렬하다. 순환이란 이다지 자연스럽고도 억지스럽다. 인간의 삶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삶이란 누군가의 등을 밟고 건너와서 또 누군가를 건너게 하는 등을 내어주는 과정이다. 인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인데 이 시는 전폭적이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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