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향수(鄕愁)와 향수(香水)

입력 2013-08-12 07:55:16

컴퓨터를 켜는 순간 집사람과 애들이 같이 찍은 사진이 보였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몰랐었는데, 갑자기 너무도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사진들을 오랜만에 꺼내 보고 있자니, 아련한 향수(鄕愁)가 더 없는 달콤한 향수(香水)가 되어 나를 매료시켰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지 모를 야릇한 기억의 향기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향수'(鄕愁)와 '향수'(香水). 동음어 사이의 놀랄 만큼 닮은 성격을 생각하며, 이미 사진 속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사진 하나하나가 갑자기 기억 속에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살아나 온통 머릿속을 휘젓는다.

사진 속에는 이 동음이의어를 동시에 담고 있다. 과거의 추억(鄕愁)과 현재의 향기(香水)가 동시에 녹아 흐르는 것이다. 요즘은 인화된 사진을 보기가 힘든 첨단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흑백 인화사진의 진한 향수는 디지털 카메라 사진으로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다. 가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인화 사진은 깊은 여운이 있다. 오래된 책 속 또는 지갑 속에 간직한 사진 한장이 그 시대의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만 디지털 사진은 그 때 잠시에 머무는 것 같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찍힌 사진들도 지나오면 다 추억인 것을 왜 싸우고, 미워하고, 돌아서서 그리워하는지…. 거대하고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 어딘가에 가만히 맺힌 모습들이 신선한 햇빛에 반짝이는 새 아침의 이슬처럼 그저 아름답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SNS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진들이 올라오곤 한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향기를 뿜고 있다. 삶에서 느낀 소소한 행복들이다. 그 순간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사랑하고, 그 속에 있는 그들을…. 바로 사진을 나누는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관객들의 마음 속에 사진을 남기는 사람이다, 비록 서툰 솜씨일 뿐이지만 나의 사진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런 진한 향기를 남겼으면 좋겠다. 매 공연마다 오랜 연습 끝에 감정이 풍부해져 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으면, 두고두고 그때 그 느낌이 진하게 보이곤 한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장면도 절대로 똑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관객들의 마음 속에 남을 한 장 한 장의 사진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두고두고 그들 속에 살아있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최선이 영원한 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나는 기꺼이 최고의 모델이 되어 보련다.

이홍기 극단 돼지 대표 ho88077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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