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조지 F, 케넌 지음/ 유강은 옮김/ 가람기획 펴냄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관통하는 현대사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국제 정세의 흐름의 한가운데를 관통했던 미국 외교의 산 증인인 저자 조지 케넌의 강연과 논문을 모은 '고전'이다. 한국어판으로는 이번에 최초로 출간된 책이다. 명성에 비해 한국어 번역본이 너무 늦었다.
지은이 조지 케넌(1904~2005)은 '봉쇄 정책의 아버지', '냉전의 설계자'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미국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역사가로, 현대사, 그중에서도 20세기 전반 미국 외교사와 냉전사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옛 소련 주재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의 대소련 관련 정책 입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플랜의 기획자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주소련 대사, 주유고슬라비아 대사와 프린스턴 소재 고등연구소의 역사스쿨 교수를 지냈다. '러시아, 전쟁을 떠나다'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 적국의 한가운데에서 '제국의 책사'로 활약했던 미국 외교관의 냉정하고 예리한 정세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화려하게 부상하던 시기에 '제국의 책사'로 활약한 그가 당시의 세계정세와 미국이 나아갈 바를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케넌의 시각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현실주의적 관점을 가진 미국 외교관의 시각이다. 미국이 안정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는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총력전이 벌어지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평행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세력 균형이 필요하고, 소련이나 나치, 제국주의 일본과 같이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거대한 패권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20세기 전반 50년의 과정을 평가하면서 향후 미국이 외교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구상을 제시한다. 이상주의로 현실을 재단하지 말 것, 곧 도덕주의와 법치주의에 얽매이지 말고 국익을 기본으로 사고할 것, 미국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사회공학을 추구하지 말 것, 신중하고 사려 깊게 세력 균형을 추구할 것 등이다. 케넌은 "그런데 2차대전 이후 유럽에 불균형이 생겨나면서 불가피하게 '봉쇄'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우리 독자들이 가장 흥미를 느끼고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국제 정세라는 측면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조지 케넌의 다음과 같이 당시 미국의 입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케넌은 "1949년 말과 1950년 초에 미국의 군사'정치 제도권에서 일본의 비무장화를 좌시할 수 없다는 확고한 정서가 고조됐다. 정반대로 앞으로 언제까지고 일본에 군대를 주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남한에 주둔한 군대를 크게 축소했다. 그리고 이 모든 조치에 대한 소련의 직접적인 반응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도록 부추기지는 않더라도 허용하는 형태를 띠었다. 한반도 전체에 공산주의 지배권을 확장하려는 의도였다. 모스크바는 한국에서 군사'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어쨌든 한국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얼핏 이 책은 낡은 시대 이야기라는 생각을 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20세기 가장 탁월한 냉전 사고자 가운데 한 명의 생각에 그치지 않고 냉전 당시의 분위기와 상황을 읽는 데에도 유용하다. 20세기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냉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고, 분단 문제가 여전히 민족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한국전쟁과 분단을 보다 입체적이고 본질적으로 접근하려 할 때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인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에 대해 "대외정책에 관해 정말로 뭔가를 아는 사람이 쓴 대외정책 서적"이라는 평을 했다.
375쪽, 2만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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