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하곡수매 풍경

입력 2013-08-07 15:16:06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는 커다란 농협 창고가 있었다. 그 창고에서 여름이면 보리 수매를, 가을이면 벼 수매를 했다. 마을 어른들은 그 양곡 수매를 '매상을 댄다'는 말로 대신했다. 매상을 대는 날은 조용하던 마을이 읍내 장터보다 더 북새통을 이룬다. 마을에 파시가 서는 것이었다. 대폿집 아지매는 막걸리를 몇 말 통이나 더 받았고, 색시 집에서는 안주를 장만하랴 색시들 몸치장을 하랴,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본격적으로 매상꾼들이 몰려들면 창고 마당은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해진다. 가끔 새끼를 떼놓고 온 어미 소 울음소리가 구슬피 하늘을 갈랐다. 염천에 쏟아지는 구슬땀을 연신 훔치면서도 농부들은 매상 가마니를 보기 좋게 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읍내 농협에서 나온 검사원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다. 행여 검사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등급이 나쁘게라도 나온다면, 다 된 죽에 코를 빠뜨리는 꼴이 된다. 등급은 바로 수매 금액과 직결되지 않던가.

검사원은 거드름을 피워가며 칼같이 생긴 것을 가마니에 푹 찔러 빼내 대충 훑어보고는 등급을 매긴다. 그 뒤로 한 사람이 따라다니며, 초록색 잉크를 묻힌 등급 도장을 가마니에 기세 좋게 때린다. 좋은 등급을 받은 이는 누런 이를 보이며 만족한 웃음을 짓지만, 낮은 등급을 받은 이는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 처럼 아쉬운 표정이다. 잠시 희비가 스쳐가지만 굳은살 박인 손으로, 떠듬떠듬 돈을 세는 농부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진지하기만 하다.

매상 대는 날은 돈이 쫙 풀리는 날이니, 대책 없는 농사꾼들은 색싯집으로 가 객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농부들은 막걸리집에서 목을 축였다. 왕대포에 굵은 소금 몇 개 던져넣고, 얼큰해지면 달구지에 올라앉아 소 엉덩이를 철썩 때린다. 그러면 주인이 달구지에 누워, 자든 말든 소는 알아서 집을 찾아간다. 고단한 농사일 중에 목돈도 받아쥐고, 목젖이 짜릿하도록 한잔 걸쳤겠다, 올망졸망 처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참으로 행복했으리라.

몸이 부서져라 가장의 책무를 온몸으로 보여주시던 우리의 아버지들. 우리들은 그런 든든한 아버지들 덕분에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에, 공부하는 모습에 보람을 찾았을 뿐 정작 자신의 삶은 따로 없었다. 오직 처자식 먹여 살리는 것이 사는 이유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옛날 아버지가 걸었던 삶의 궤적을 우리가 따라 걷고 있다. 막상 그 길을 걸어보니, 아버지들이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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