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 수필-열대야

입력 2013-08-01 14:33:45

양종균(대구 수성구 상동)

낮에는 삼복더위, 밤에는 열대야. 천지 사방이 찜통이다. 방안의 온도계는 30℃를 오르내리고, 내 마음은 40도로 치닫는다. 선풍기도 더운지 제 구실은커녕 훈풍이다.

에어컨 바람이 싫다는 사치스런 핑계는 접어두고 에어컨 장만하겠다고 별러 보지만 30대의 선풍기가 날려버릴 돈이 무서워. 그 때문에 더한층 열 받는 가슴을 식혀보고자 강변으로 나갔다. 강바람 시원하지만 여기도 벌써 만원이다. 남녀노소 체면 없이 이부자리 펴고서 늘어져 있다. 저들도 열대야에 쫓겨 나온 것일까? 나처럼 에어컨이 없어 말이다. 열대야는 에어컨이 없는 집에 찾아온다.

올해도 열대야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언제나 방문을 꼭꼭 잠그던 과년한 딸아이도 방문을 활짝 젖히고 잠 못 이뤄 뒤척인다. 먼지가 귀찮다며 한사코 창문을 닫던 아내도 창문마다 열고서도 덥다는 말뿐이다.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켜시던 어머니는 사람 잡을 더위라며 홀쭉한 젖가슴 풀어헤친다. 앞집에서 내려 볼까 봐 속옷만은 챙겨 입던 나도 훌러덩 벗어버리고 체면 없이 서성인다. 방마다 선풍기는 못난 주인을 원망하듯 힘겹게 돌고 있다.

후덥지근한 선풍기의 지쳐버린 바람 탓에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또다시 물을 덮어쓰지만 수돗물도 열대야에 시원함을 빼앗겼다. 삼복 폭염에 찾아온 불청객은 기약 없는 한줄기 소나기만 기다리는 나를 한껏 비웃는다. "에어컨도 없는 못난 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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