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준공·저수지 개선… 교육장엔 희망의 땀방울
지금 에티오피아는 2005년 11월 23일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그레고리 달력이 아니라 율리우스 달력을 쓰기 때문이다. 율리우스력에서 1년의 끝은 12월이 아닌 13월이고, 그레고리 달력에 비해 7년여가 늦다. 3천 년이 넘는 역사에 아프리카에서 유일한 고유 문자인 암할릭어를 갖고 있고, 종교도 에티오피아 정교가 우세하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 역사가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도 강하다. 하지만 자부심과 별개로 주민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80여 개 종족 간의 갈등이 내재돼 있고, 인구 과반수가 빈곤과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새마을시범마을은 모두 5곳이다. 3곳은 남부지역인 오로미아주 아르시 지역에, 2곳은 북부지역인 티그리아주 맥켈레 지역에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주로 새마을조직 육성과 의식개혁운동, 생산기반 및 주거환경개선사업, 소득증대사업 등에 집중돼 있다.
◆생활기반 조성 성과
한도데 마을에 가려면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차로 3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도로는 뿌연 먼지와 매연으로 숨이 막혔다. 말이 끄는 수레인 '가리'와 마차, 소 떼와 양 떼, 당나귀가 차와 뒤엉켜 가뜩이나 좁은 도로가 어지러웠다.
에티오피아의 가장 큰 숙제는 '물'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가뭄으로 농업 기반이 취약하고 식수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해발 1,800m가 넘는 고원지대인 에티오피아의 산은 온통 황톳빛이다. 산에 있는 나무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산림은 황량하다. 너른 평원에도 초목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주식인 인젤라의 재료가 되는 떼프(메밀과 비슷한 곡물)를 심기 위해 밭을 가는 농부들도 있지만 수확량은 많지 않다. 연중 비가 오는 시기가 한두 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들에게는 수확한 떼프잎을 먹이지만 영양분이 없어 뼈가 앙상했다.
376가구, 2천894명이 거주하는 한도데마을은 잘 정돈돼 있었다. 너른 운동장에는 미끄럼틀과 시소, 정글짐 등 어린이 놀이기구를 설치했고, 울타리와 돌길을 만들어 정비했다. 마침 마을에서는 유치원 준공식이 한창이었다. 기존의 좁은 건물 대신 구미시 새마을회의 지원을 받아 교실 2칸과 교무실, 교보재 창고 등을 갖춘 새 건물로 건립했다. 책상,걸상, 칠판, 책꽂이, 게시판 등도 갖췄다. 주민들은 일을 하며 유치원 공사에 힘을 보탰다.
새마을봉사단원들은 낡은 저수지도 보강했다. 조성한 지 40년이 지난 저수지는 모래가 퇴적되고 둑이 낮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봉사단원들은 바닥 아래 비닐을 깔아 오랫동안 물을 담아둘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여타 저수지에 비해 저수 기간이 3, 4개월이 더 길어졌다. 바닥을 깊이 파고 붕괴위험이 있던 둑도 보수했다. 급수대를 만들고 저수지 주변에는 안전펜스를 설치해 가축들이 빠져 죽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 저수지 공사에 참여한 우말 카디르(27) 씨는 "저수지가 개선된 건 정말 큰 변화"라며 "웅덩이에서 소나 작은 가축들이 빠져 죽는 일이 사라졌고, 질병에 걸리는 일도 크게 줄었다"고 기뻐했다.
마을 안길을 확장하고 배수로를 설치한 점도 눈에 띈다. 비포장길이었던 마을 안길은 우기가 되면 말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됐다. 하지만 길을 넓히고 양끝에 수로를 정비해 진흙탕이 되는 일을 막았다. 또 마을 안 수로를 저수지까지 연결함으로써 보다 많은 빗물을 저장할 수 있게 했다.
이곳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이다. 에티오피아의 공용어는 암할릭이지만 오로미아주인 이곳에서는 원래 부족언어인 오로미아어를 쓴다. 김윤성 팀장은 "오로미아어를 미리 배울 기회가 없는데다 암할릭과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사업 의도를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며 "아직은 의식 있는 주민들이 주도를 하는 상황이지만 곧 새마을운동의 정신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거환경 개선과 기술교육 활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손님을 맞으면 '커피 세레모니'를 준비한다. 갓 따온 푸른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한 방석 위에 송진을 태우고 금방 볶아 절구에 부순 커피가루와 물을 함께 담은 주전자를 숯불 위에 끓인다. 진하고 깊은 커피향. 자신들은 비싸서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를 손님을 위해 아낌없이 잔에 붓고 또 채운다. 커피 세레모니가 끝나자 떼프로 만든 인젤라와 아락케라고 부르는 전통술을 내왔다. 인젤라는 호리병 모양의 마조리아에 떼프 가루를 물과 섞어 3일간 발효시킨 뒤 프라이팬에 굽는다. 오래된 막걸리처럼 시큼한 맛이 특징이다. 옥수수 증류주인 아락케는 알코올도수가 60도인 독주로 쌉쌀한 곡물 맛이 난다. 인젤라를 굽는 전통화덕은 연기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 주민들은 늘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다. 이 점에 착안한 새마을봉사단과 부녀회원들은 직접 개량 화덕을 제작했다. 주거 환경도 개선하고 이웃에 팔아 소득도 올리니 일거양득이다. 지역 정부도 부녀회원들이 제작한 화덕에 큰 관심을 갖고 제작기술 전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한도데마을은 인근에 있는 국립직업훈련학교인 이테아 기술교육학교와 연계해 마을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이테아 기술교육학교는 주로 취업 준비생을 돕기 위한 기술 교육과 직업훈련 교육을 실시한다. 컴퓨터와 건축, 목공, 전기설비, 의류 재직 등 8가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현재 336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연간 교육비도 70~200비르(한화 약 4천200~1만2천원)으로 저렴하다.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는 주로 단기 과정을 위탁 교육한다. 교육 내용도 컴퓨터와 건축, 목공, 용접 등 소득과 연계될 수 있는 과정이다. 특히 농업전문 강사를 초청해 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감자와 양파, 마늘 등 특용작물 재배법도 교육했다. 이 학교 타파 하이루(48) 교장은 "마을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IT 분야와 전기 분야 강사를 요청한 상태"라며 "주민들에게 필요한 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방식으로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도데마을 다리발차(39) 새마을지도자회장은 "그전에는 마을 내에 어떠한 주민 조직도 없었고 함께 일하지도 않았다"며 "협동하면서 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새마을 교육을 통해 주민들이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인의 근면함 배우면 에티오피아도 발전될 것"
이테아 기술학교 타파 하이루 교장
타파 하이루(48) 교장은 지난 2011년 한국에서 새마을교육을 받고 돌아왔다. 그해 이테아 기술교육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마을시범마을 조성 사업을 지원하고 연계할 방안을 찾는 일이었다. 취업 준비생이나 직업 교육생만을 위한 훈련 교육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 방문, 특히 새마을 교육은 나태했던 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왜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가, 세계적으로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깨닫게 된거죠. 제가 내린 한국의 발전 비결은 '근면'입니다. 그런 근면함을 배운다면 에티오피아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파 교장은 "새마을운동이 에티오피아에 정말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새마을정신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중요합니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이 다른 국가의 원조에 매달리도록 하지 않고 발전의 씨앗을 심는 겁니다. 누구라도 일할 준비가 됐고, 자신을 믿는다면 더 나은 미래와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새마을운동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문제 해결을 위해 타파 교장은 "새마을운동의 목적과 마을 사람들의 필요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성을 키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