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휴가 일정에 들어가면서 대한민국이 '휴가 모드'에 돌입했다.
중부 지방의 긴 장마와 남부 지방의 폭염을 피하려는 국민들도 박 대통령의 휴가 일정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선가 아침 출근길이 다소 수월해졌고 점심을 먹으려고 찾은 상가에서는 '휴가 중'이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문을 닫은 가게들의 모습도 적잖게 눈에 띈다. 방학을 맞은 중고생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위해 다니던 학원들도 '반짝 휴가'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휴가 이틀째인 30일 박 대통령이 남해안의 한적한 섬 '저도'에서 유유자적하면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평소 청와대에서의 딱딱하고 근엄한 박 대통령이 갑자기 '이웃집 아줌마'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박 대통령의 이번 휴가는 역대 대통령의 그것과 조금 달라졌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휴가지를 극구 보안에 부쳤지만 박 대통령이 '저도의 추억'이라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온 국민에게 알렸고 평소와 다른 평상복 차림의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간 것이다. 대통령의 휴가도 일반 국민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의 휴가는 온 국민의 휴가 패턴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비우면 국정이 중단될 것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청와대에 머물면서 휴가 일정을 소비하거나 아예 휴가지를 공개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고 국정 중단이나 국정 공백 사태는 빚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연일 공직 기강을 강조하고 있고 아예 공무원들에게 국내 경기 회복을 위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것을 당부하는 노파심을 발휘하기까지 했다. 청와대는 허태열 비서실장이 지키고 있다. 허 실장은 휴가를 가지 않은 수석비서관과 선임비서관들을 소집, 일일 상황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이웃 중국에서는 휴일이 겹치면 '황금연휴'를 만들면서까지 소비 확대를 통한 경기 회복에 신경을 쓰고 있다.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지 않으면 고위 공무원들도 휴가 일정을 챙기기 어렵고 공직 사회의 위축은 민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잖다. 이번 4박 5일뿐 아니라 박 대통령이 앞으로도 휴가 일정을 더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과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이번 휴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책을 한 보따리 들고갔다는 후문도 들린다. 평소 국정 때문에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하던 책을 읽기에 휴가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편안하게 휴가를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꼬여 있는 개성공단 해법 등 남북문제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조사 등 정국 쟁점에 대해 박 대통령이 나 몰라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8'15 광복절에는 '경축사'를 통해 국정 현안과 하반기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지지율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일자리 회복과 경기 둔화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도 고민이다. 50여 일째 공석 상태인 정무수석과 지체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도 서둘러야 한다.
야당인 민주당은 아예 대변인이 나서 "오랜만에 갖는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 실타래처럼 꼬인 정국 문제를 해결할 묘책을 꼭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부담을 잔뜩 안긴 상태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이 편안하게 휴가를 보낼 상황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국정 현안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서 아예 단절해서라도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휴가를 챙긴 적이 없다. 당대표 시절에는 삼성동 자택에 머물면서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여름휴가였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처음으로 맞이한 이번 여름휴가는 사실상 35년 만에 저도를 찾았듯이 정말 모처럼 만의 '휴가다운 휴가'다.
그러니 박 대통령에게 이번 휴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대로 휴가를 즐길 것을 권한다. 휴가는 국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日常)에서 벗어나서, 심지어 '일상에서 탈출하는 것이 휴가'라고 하지 않던가. 민주당의 압박이나 언론의 관심, 청와대 참모들과 장관들의 밀린 결재 따위는 잊어버릴 것을 권한다.
박 대통령의 여름휴가 동안 정치권도 정쟁에서 벗어나 휴가 모드에 들어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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