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사랑하는 루크 브레넌을 추억하며

입력 2013-07-31 07:31:04

필자가 몇 년 전 미국 체류 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미국이 역사 현장의 기록을 무척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그 기록의 주된 내용은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말이다. 그 기록을 현장에서 보며 미국인들은 모국에 대한 긍지와 미래에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온갖 인종들이 모인 미합중국이 하나의 국가적 정체성을 지키며 세계를 끌어가는 저력이 여기에 있다고 느껴졌다.

역사 현장의 기록은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스벨트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칼럼의 제목은 버지니아 주 버크 호수의 벤치에 붙어 있는 동판의 문구를 따온 것인데, 이런 것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공원의 벤치, 다리, 개인 가옥 등에는 이름 없이 살다간 소시민들에 대한 기록이 조그만 동판에 담겨 살아 있는 사람들을 반긴다. 한때 사랑한 사람에 대한 추억을 담아 형편껏 공공 시설물을 기부하고 거기에 소박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과 그들이 남긴 말에 대한 기록은 책에나 있을 뿐, 역사 현장에는 고증 안 된 건물이나 동상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장에서 느끼고 학습할 게 별로 없다. 하물며 소시민들에 대한 기록물은 엄두도 내지 못할 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은 유치원생들도 아는 우리네 삶의 본원적 욕구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족보와 무덤(또는 납골당)에 이름 석 자 남는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폐쇄적 가족주의의 산물로, 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분열과 단절의 원인이 된다.

이를 벗어나 많은 소시민들이 생전에나 사후에 공동체 속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길을 열어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마을 가꾸기, 다리 놓기, 길 닦기, 공원 만들기 등에 개인들이 자진 기부하게 하고 그들의 뜻을 동판에 새겨 현장에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작은 벤치 하나에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자.

복지 재정 수요는 급팽창하는 반면 돈 가진 사람들은 마땅히 쓸 곳이 없어 돈을 쌓아놓고 있는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돈 가진 사람들이 그 돈을 공익에 쓰게 하고 그 대신 공동체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해주는 것은 꽤 괜찮은 거래가 아닐까. 묵히는 돈을 공동체의 이로운 곳에 쓰게 한다면 돈 쓰는 사람과 그 혜택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만큼 주민 복지 수준과 공동체 의식도 높아지고 국가나 지방의 재정도 절약될 것이니 일석삼'사조다.

그렇게 하자면 제도 정비와 사회적 운동이 필요할 것 같다. '지가 뭔데' '돈 자랑하나' 하는 얘기들이 앞서면 일이 될 턱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소시민들을 대상으로 조그만 시설물에 기부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민공원을 만들 때 공원의 벤치 하나하나를 시민들의 소액 기부로 만들고 그 벤치에 그들의 뜻을 새긴, 작지만 오래가는 동판을 붙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많은 소시민들이 동참하게 되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확대될 것이고, 점차 큰 시설물들도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A. Smith)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에서 개개인의 이기주의가 국부(國富)의 원천이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국부론의 철학적, 심리학적 기초가 된 도덕정조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불행을 보면 슬퍼진다고 하였다.

버논 스미스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대한 논문(V. Smith, 1998)에서 국부론과 도덕정조론은 공히 하나의 행동 원리 즉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교환하고자 하는 성향에 기초하는데, 그 교환 대상은 물건(goods)뿐만 아니라 호의(favors)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남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느끼는 행복 또한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을 공원에 기부한 벤치에 새길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러한 본성과 이기심을 동시에 보듬는 방도가 아닐까.

장재홍/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