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박 2일의 짧은 가족여행을 휴가차 다녀왔다. 고등학생이 된 뒤 방학이라는 작은 호사마저 누리지 못하게 된 아들 녀석의 바쁜 스케줄 탓이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 요즘 세태가 안타깝기만 한 노릇이다.
그래서 휴가의 콘셉트는 레저문화의 대세라는 캠핑으로 정했다. 물론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다. 아들과 함께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별빛 쏟아지는 텐트 안에서 정을 나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설렘이다.
그러나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밤늦게 캠핑장에 들어온 이웃 가족들은 휘영청 보름달이 새벽이슬을 맞을 때까지 수다 꽃을 피웠다. 쪽잠을 자고 난 뒤 전날 취사장에 두고 왔던 아침거리용 숯을 그들이 이미 써버렸음을 알았을 때는 개그 프로그램 속 유행어 하나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객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더욱 가관인 것은 그들의 취중대화 속에 '역지사지'(易地思之), '혼자만 생각하고 살면 안 된다' 같은 교훈이 오갔다는 사실이다.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자신의 아이에게 가르치는 고성(高聲)이 이웃에겐 '한여름밤의 악몽'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남들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해지는 건 '필부필부'(匹夫匹婦)의 한계인 듯싶어 씁쓸하기만 했다.
'박기후인'(薄己厚人'자기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라는 선비정신)의 선비정신이 실종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각종 황당무계한 소식들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교육부 감사 결과, 전국 39개 대학은 직원의 사학연금 개인부담금을 등록금으로 구성된 교비회계 등으로 대신 내줬다. 금액이 2천억원을 웃돌았다. 또 일부 국립대학병원들은 직원은 물론 퇴직 교직원과 그 가족에게까지 진료비 감면 혜택을 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병원이 2010~2012년 직원과 가족, 퇴직자들에게 감면해준 진료비 액수는 778억원에 달했다. 모두, 반값등록금은커녕 형편이 어려워 고작 시간당 몇천원짜리 아르바이트에 나서야 하는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는 처사다.
정치권의 이율배반적 행태는 입에 다시 올리기조차 민망하다.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해 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숨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들을 보면 박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검찰과 전직 대통령의 '숨바꼭질'이 어떻게 결론날지 자못 궁금하다.
여기에다 현직 대통령을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으로 표현한 한 국회의원의 발언은 어떤가. 대통령의 외국 국빈 방문 중 전대미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일으켰다가 사법처리를 받을 처지에 놓인 전직 청와대 대변인은 또 어떤가. 이쯤 되면 국제중'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를 '귀족학교' '특권 학교'라고 줄곧 비판해 놓고는 정작 자신의 아들은 자사고에 입학시킨 한 지방의회 의원의 처신은 애교쯤으로 봐줘야 할까?
며칠 전 대구 '문화시민운동협의회'가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는 뜨끔하기만 했다. 시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민의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는 만족스러운 수준인 76.2점을 줬지만 타인에게는 보통 수준인 59.3점을 매겼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꼴이다.
시인 윤동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산다'는 건 도대체 보통사람이 할 수 있기는 한 일일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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