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30년 사상 15개 뿐, 사이클링 히트 2개 친 '양신'
이달 5일. LG 트윈스 이병규는 서른아홉의 나이, 그리고 데뷔 17년 만에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출범 후 15번째 나온 진귀한 기록이었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단타, 2루타, 3루타에 홈런까지 때려내야 완성되는 사이클링 히트는 그만큼 어렵다. 공을 맞히는 능력뿐 아니라 장타력, 여기에 빠른 발도 갖춰야 도전해볼 수 있다. 많은 선수가 이 중 하나를 때려내지 못해 대기록의 문턱 앞에서 주저앉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30년이 넘도록 사이클링 히트는 15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팬들은 2009년 4월 11일 두산의 이종욱이 기록한 이후 해수로 4년, 날짜로는 1천546일을 기다려야 했다.
이토록 진귀한 사이클링 히트는 삼성 라이온즈와 인연이 깊다.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가 삼성에 의해 작성됐고, 가장 많은 사이클링 히트를 삼성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총 15차례 중 4차례를 삼성이 빚어냈다. 10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KIA(전신 해태 포함)와 SK, 넥센은 아직 단 한 차례도 사이클링 히트를 엮어내지 못했다.
삼성 오대석(현 한화코치)은 1982년 6월 12일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삼미를 상대로 사이클링 히트에 성공, 1호의 주인공이 됐다. 1996년 8월 23일 양준혁(현 야구해설위원)은 현대와의 대구 홈 경기서 자신의 첫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2003년 4월 15일 수원구장에서 현대를 상대로 두 번째 대기록을 완성했다. 한 선수가 두 번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사례는 양준혁이 유일하다. 2001년 5월 26일 대구 해태와의 경기서는 외국인 선수 마르티네스가 삼성에 세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선사했다.
국내 타자 최초로 양준혁이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2003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33세 10개월의 양준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트레이트로 2년간 LG서 뛰다 2002년 다시 삼성의 부름을 받고 사자 유니폼을 입은 양준혁. 1993년 데뷔 후 9년 연속 타율 0.300 이상을 때려낸 그의 방망이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2002년 타율 0.276에 그치며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한물갔다'는 수군거림이 흘러나왔고, 팀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6번타자의 임무를 부여했다.
양준혁은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 양준혁은 2회 첫 타석에서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으로 대기록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4대1로 앞선 3회 1사 1, 2루서 좌전안타를 날렸다. 타격감이 좋다 여긴 양준혁은 4회 2루타를 추가하며 대기록에 성큼 다가갔다. 대기록을 완성하려면 3루타가 필요했지만, 마음먹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외야 수비를 꿰뚫는 장타를 때려야 하는 데다 약간의 수비 도움에 발도 빨라야 이뤄낼 수 있는 게 3루타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즉 양준혁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1천406개의 안타를 때려냈으나 3루타는 19개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6회 1사 2루. 양준혁이 특유의 어슬렁거리는 폼으로 타석 박스로 걸어오자 관중은 "3루타"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양준혁도 방망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마운드는 현대의 4번째 투수 김성태가 서 있었다. 공을 때려낸 손맛이 좋았다. 공은 우중간을 꿰뚫고 펜스까지 굴러갔다. 양준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3루로 향했다. 세이프.
1996년 첫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을 때와는 기분이 달랐다. 33개월 10개월 19일의 양준혁은 사이클링 히트를 때려낸 최고령 선수로 기록됐고, 유일하게 두 번의 감격을 맛본 선수가 됐다.
전날까지 타율 0.385로 7위에 머물렀던 양준혁은 이날의 활약(5타수 4안타) 덕분에 타율을 0.452까지 끌어올려 타격 1위에 올라섰다.
삼성은 16안타를 퍼부으며 현대를 11대4로 물리쳤고, 개막 이후 9연승을 질주했다.
양준혁은 당시 "단지 운이 좋았다"고 애써 에둘렀지만 지난 시즌 부진을 털어버린 데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양준혁은 한물갔다는 주위의 시선을 잠재우려 정신자세를 새롭게 하고 타격폼도 고쳤다. 배트 무게도 910g에서 840g으로 줄였다. 백스윙 폭을 줄여 오른쪽 어깨가 많이 열리는 것을 고치려 했다. 타격 때 들던 오른발도 땅에 붙였다.
올 시즌 이승엽에게 개인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그리고 이병규에게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타이틀을 넘겨줬지만 양준혁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타자였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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